그게 아닌데(15-1)

졸업생 공연연습

by 생각의 변화

1227 서머싯 몸


저번 주에 연출이 바뀌면서 갑자기 모든 게 바뀔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그리고 또 한번 갑작스럽고 전격적으로 결정하는 낙근에게 놀라고 있는 중이다.

“낙근이 걘 완전 P야. 왕 P. 기타 배우겠다고 기타 사고 악보 사고 다 산 다음에 며칠 치다가 그냥 때려치운다니까. 걔가 그나마 오래 하는 건 사진이랑 연극 정도일 걸?” 내가 예전에 선규로부터 들었던 말인데 당시에는 이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낙근은 완전 J인데.

<신이국기>때는 연극이 시작되면 모든 장면은 낙근의 계획대로 움직였고 동선이나 큐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끝나고 나서 여지없이 지적을 당했다. 신입생이었던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열댓 명 되는 배우의 모든 동선과 큐를 외우고 있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인지 삼십 년 넘게 알고 지내 온 낙근은 내게 주도면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점은 있었다. 저렇게 논리적이고 치밀한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서 “얼굴빛이 참 좋으세요” 같은 말을 하면서 전도를 하고 다녔을까.


저번 주에 연습을 한 이후로 이상하게 마음이 갑갑했다. 그러던 중에 문득 2주 전에 은하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페라를 보고 와서 단톡방에서 자신은 오페라를 보면서 서머싯 몸의 단편 <비둘기의 노랫소리>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러닝타임이 6시간이니 작가의 모든 작품을 떠올려도 시간이 남을 듯) 떠올렸다고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라 팔테로나가 부르는 이졸데의 노래를듣는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던 책에 점점 쏙 빨려 들어간다. 평생 수많은 작가들을 읽었고 수많은 작가들이 되고 싶었지만 서머싯 몸처럼 내가 좋아하고 되고 싶은 작가는 처음이었다. 그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내 읽었다. 댄서들, 행복한 커플, 비둘기의 노랫소리, 사자의 가죽으로 시작돼 심판대, 척척박사로 이어져 새가슴으로 끝날 때까지 모든 단편들이 흥미롭고 유쾌했다.


내가 이토록 서머싯 몸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방식과 지향점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는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편집한다. 유머를 잃지 않고 섣부른 해피엔딩을 경계하고 작가 혹은 인간이 타인에 대해 알 수 있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점도 멋지다. 하지만 작품들 속에서 작가의 통찰력은 보석처럼 빛난다. 은하는 아버지가 영어 선생님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책들 속에 뒤덮여 자랐는데 아버님은 (셰익스피어를 제외하면) 서머싯몸의 문장을 최고로 치셨다고 한다.


서머싯 몸의 작품 속에서는 선량함과 잔혹함(<행복한 커플>이, 예술적인 완벽함과 인간적인 미성숙함(<비둘기의 노랫소리>)이, 비겁함과 정의로움(사자의 가죽)이, 자랑과 치부(<새가슴>)가 공존한다. 가장 좋은 점은 이 모든 것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이야기 속에 풀어낸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가 코미디를 택한 이유와도 통하는 부분이다. 내가 스무 살에 연기하고 연출했던 연극들은 온통 심각한 것들이었는데, 아! 그때는 왜 그렇게 웃음에 인색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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