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by 생각의 변화

감독


리틀야구는 프로야구와 전혀 다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리틀야구 감독도 프로야구 감독처럼 효율적인 투수 로테이션 또는 필승 계투조를 찾기 위해서 고민을 한다. 투구 수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열 살 투수는 하루에 75개를 넘는 공을 던질 수 없고 2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면 무조건 하루 이상을 쉬어야 한다.

리틀야구 경기를 하는 야구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경기가 시작되면 양쪽 코치들이 덕아웃 근처에서 스톱워치 같이 생긴 걸 들고 서있는 모습이다. 피치카운터, 투구 수를 세는 도구이다(요즘은 앱으로도 한다). 코치들은 자기 팀과 상대 팀 투수의 투구 수를 모두 센다. 이 규정은 투수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잘 던지는 한 명의 투수에 의해서 게임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이 있다. 평균적으로 사나흘마다 한 번씩 경기가 있는 하프할로우힐 리틀리그 일정을 고려하면,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십 개 공으로 두세 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투수 세 명 정도가 필요하다.


자이언츠 전을 위해서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피카렐라가 만나자마자 반색을 하면서 우주가 오늘 공을 던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열흘이나 쉬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우주가 못 던질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우주는 자이언츠 전 선발투수라는 얘길 듣더니 연습 투구를 해야 겠다면서 내게 공을 받아달라고 했다. 리틀야구가 프로야구와 비슷한 점이 또 있다. 감독이 선수에게 믿음을 주고 보직을 보장해주면 리틀 야구 선수도 프로선수처럼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한다. 그리고 당연히 실력도 는다. 우주는 다이몬드백스 전에서 패전투수가 됐지만 감독이 투수로서 또 타자로서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주는 다이아몬드백스 전이 끝나고 나서부터 구속을 좀 더 올리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내게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투수가 유명하냐고 묻곤 했는데 나중에는 자신이 알아서 유투브 동영상을 포함한 검색 가능한 여러 가지 동영상들을 찾아봤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보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는 것이 더 어려웠기 때문에 우주가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투구를 야구 중계로 보는 것은 어려웠다. 왜냐하면 롱아일랜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기는 폭스 채널에서 하는 양키즈나 메츠 같은 뉴욕 연고지의 팀 경기뿐이었고 다저스 같은 다른 지역 팀 경기는 따로 비용을 지불 해야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더, 리틀야구 선수에게도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우주는 자이언츠 전부터 프로스펙트 스포츠에서 던졌던 구속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그리고 폼도 좀 바뀌었는데 와인드업 때 멈춤 동작을 만든 것이 힘을 모으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구속이 빨라진, 정확히 말하면 원래의 구속을 되찾은, 진짜 이유는 자신감이었다.

우주는 몇 경기를 거치면서 각 팀 라인업에서 중심 타자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한 가운데로 넣어도 자신의 공을 칠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자이언츠 전 선발로 나선 우주는 3이닝 동안 무실점이었고 여섯 개의 삼진을 잡았다. 미국에서 등판한 경기 중에서 가장 좋은 투구 내용이었다.

상대 팀 타자들은 대부분 타이밍이 늦었다. 우주의 호투와 1회 초 2타점 3루타로 3회까지 8:0. 승리가 바로 코앞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우주를 이어 4, 5회에 올라온 벤이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4실점 하였고, 5회에 벤에 이어 올라온 존도 제구에 애를 먹으며 석 점을 내줬다. 반면에 우리 팀 타선은 4, 5, 6회에 계속 침묵했다. 6회 만루의 위기, 존이 마지막 타자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우리 팀은 8:7로 승리했다. 5승 1패.


하프할로우힐 리틀 리그는 여덟 개 팀이 각각 두 번씩 붙는데. 마지막 경기인 말린즈 전 이후로는 메츠부터 차례대로 다시 경기를 하게 된다. 여섯 번의 경기를 통해서 파악한 우리 팀의 몇 가지 장점을 짚어보자면, 우리 팀은 1번 마이클부터 6번 코너까지로 이어지는 상위타선이 좋은 편이었다. 3, 4번 말고도 5번을 치는 우주도 클러치 능력이 있었고, 6번 타순에서 치는 코너도 타격 능력이 뛰어났다. 두 번째는 벤, 존, 우주가 주로 맡고 있는 투수진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물론 이전 경기였던 자이언츠 전처럼 제구가 흔들리는 날도 있었지만. 구위가 좋은 선발투수 세 명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강팀이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장점은 우리 팀의 감독이 피카렐라라는 것. 피카렐라를 처음 봤을 때 조금 실망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까지 미국 리틀야구 감독이라면 덩치도 크고 야구실력도 출중한 사람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카렐라는 체격이나 야구 실력 면에서 나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감독으로서 피카렐라의 능력은 다른 데 있었다. 그건 팀을 관리하고, 아이들을 격려하고, 경기를 풀어내는 능력이었다. 1라운드 여섯 경기를 통해서 피카렐라는 선수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였고, 라인업과 필승계투조를 만들었다. 게다가 장타력이 있는 코너까지 덤으로 팀에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팀에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건 들쭉날쭉한 수비였다. 어떤 경기는 문제없이 잘하다가도 어떤 경기는 집단 수비난조를 보이기도 했다. 수비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해야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했다.

자이언츠 전을 끝내고 사흘 후에 말린즈와 리그 선두를 결정하기 위한 결전이 시작되었다. 우주는 선발투수, 5번 타자로 출전했다. 제구도 안정적이고 구속도 좋았다. 하지만 결과는 2와 1/3 이닝동안 6실점. 말린즈는 지금까지 만난 타선 중에서 가장 막강한 타선이었다. 클린업 트리오 모두 컨택 능력과 장타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4번 타자가 발군이었다. 우주를 상대로 두 타석에서 모두 외야로 뻗어나가는 빨랫줄 같은 타구를 날렸다. 2루타와 3루타.

6번까지 상위 타선에 포진한 타자들이 공을 잘 맞추는데다가 중간 중간 외야로 멀리 뻗어 나가는 장타까지 터지면서 우리 팀 수비는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완전히 붕괴되었다. 쉬운 내야 땅볼도 제대로 처리가 안 되었고, 평범한 플라이도 놓치기 일쑤였고, 중계 플레이는 언감생심이었다.

우리 팀은 순식간에 여섯 점을 내줬다. 우주 이후에 나온 투수들도 줄줄이 볼넷, 실책, 장타를 얻어 맞으면서 6회까지 무려 24점을 내줬다. 3회 이후로 경기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지만 경기는 6회까지 계속되었다. 상대 팀 선발은 조금 작은 키의 오른손 투수였는데 오버핸드로 제법 빠른 공을 던졌다. 우주는 3타수 2안타 2타점에 3루타 하나였다. 두 번째 타석에서 중견수에게 잡힌 공도 꽤 멀리까지 간 공이었는데 상대 팀 중견수가 잘 쫓아가서 아쉽게도 아웃이 됐다. 4:24.

완벽한 패배였다. 1라운드를 하는 동안 두 번 패했는데 다이아몬드백스 전과는 달리 이번 패배에서는 우리 팀이 상대 팀에 비해 모든 면에서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점차, 다음 경기에서는 이 점수 차를 극복할 수 있을까?


(24화에서 계속)


IMG_0048.JPG 자이언츠 전


keyword
이전 11화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