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반환점을 돈 우리 팀의 1라운드 순위는 말린즈에 이어 2위였다. 우리 팀은 1라운드에서 말린즈와 다이아몬드백스에게 져서 2패를 당했지만 나머지 경기를 모두 이겼다. 우리 팀은 경기를 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강해지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우주였다. 우주는 경기가 거듭될수록 자신감이 붙으면서 투구와 타격이 모두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금상첨화로 조금 늦게 합류한 코너가 무시무시한 6번 타자로 팀 전력에 큰 힘을 보탰다. 1라운드 후반부터 터지기 시작한 코너의 장타력은 무시무시했다. 타선만 놓고 보면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말린즈에 뒤지지 않았다.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 남은 기간 동안 우리 팀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수비였다. 하지만 어쩌면 투수나 타격보다 오히려 수비가 경기를 해나가면서 해결이 가장 어려운 걸 수도 있었다.
두 번째 라운드의 첫 번째 경기 상대는 다시 메츠. 선발투수로 등판한 벤은 아웃카운트를 하나 잡고 볼넷으로만 만루를 채웠다. 피카렐라는 우주를 올렸다. 우주는 삼진 두 개로 이닝을 마무리하고 4회까지 단 한 점도 주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보여줬다. 말린즈 전에서의 대량실점은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팀 타선도 우주의 호투에 부응하듯 4회까지 12득점을 하였다. 12:0.
5회에는 매튜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내가 야구를 가르쳐 줬던, 딱히 가르쳐준 건 없지만, 유일한 미국인 아이인 그 매튜. 매튜의 야구 실력은 시작할 때와 비교해서 많이 늘지는 않았다. 여전히 타석에서 아웃이 되면 덕아웃에서 우는 경우가 많았고, 매튜의 부모는 경기 중에 매튜를 달래느라 여전히 애를 먹었다.
열두 점차. 일반적으로 야구에서 두 이닝이 남았는데 열두 점차라면 안심할 수 있는 점수 차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프로야구에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리틀야구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리틀야구를 경험하면서 느낀 건 열두 점차가 절대 큰 점수 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주가 뛰었던 팀들의 경기만 보더라도 열 점을 앞선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하기도 했고 그 반대의 경기를 뒤집기도 했다. 한 이닝에 열 점을 내는데 또는 잃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건 프로야구와 마찬가지이다, 볼넷과 실책이다.
프로야구에서도 연속 안타만 가지고 빅이닝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더군다나 공을 잘 맞추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하위타선에 배치되어 있는 리틀 야구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니 뒤집어 생각해보면 열 점을 앞서고 있는 팀이 조심해야 할 것 또한 두 가지이다. 볼넷과 실책. 실책은 주로 야수들의 몫이니 투수인 매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든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볼넷을 주지 않는 것. 그럼 적어도 대량실점은 피할 수 있다.
피카렐라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약간의 모험을 하면서 새로운 투수를 올리려고 노력했다. 나는 지금도 피카렐라의 이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아이들은 자신이 투수가 되어 주목을 받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 때문에 경기에서 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내셔널즈에 속한 열두 명의 아이들이 모두 클린업트리오와 선발투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승리와 형평성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이 허락할 때 주축 투수가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도 등판의 기회를 주어야 했다. 열두 점을 앞서 있는 5회라면 최적의 상황이었다. 매튜는 상기 된 얼굴로 마운드에 올랐다. 매튜의 공은 빠르진 않았지만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잘 들어왔다. 매튜는 석 점만을 내주고 경기를 마쳤다. 12:3. 매튜는 피카렐라로부터 오늘의 선수에게 주는 야구공을 받았다. 공을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애스레틱스와의 경기는 상대 팀 선수들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취소됐다. 우리 팀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우리 팀은 수비 연습을 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다음 경기 상대는 1라운드 때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 준 두 팀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백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오후에 비가 좀 오다가 갰다. 그라운드가 조금 젖어 있긴 했지만 옷세고 파크의 흙은 비교적 배수가 잘 되는 흙이었고 경기를 시작하기 전 비 오는 동안 그라운드를 비닐로 덮어 놓았기 때문에 경기를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이아몬드백스 전의 선발은 벤이었다. 상대 팀의 투수는 지난 경기 때 투수가 아니었다. 경기는 1회부터 쉽게 풀렸다. 상대 팀 투수는 볼넷을 남발했고 우리 팀은 쉽게 대량득점에 성공했다. 선발로 올라 온 벤은 안정적인 투구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해 나갔다. 벤이 실점 없이 세 이닝을 던졌고 우주는 이후에 두 이닝을 던지고 한 점을 내줬다. 18:1의 대승이었다. 우주는 타자로서 2개의 볼넷과 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대단한 비거리를 보여준 타격이었다.
야구 경기가 끝나고 이틀 후에 피카렐라가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Hi,
How are you?
I still can't believe how far that shot was by Wooju last night.
He is an excellent ball player.
I want you to know that I selected Wooju for the All-star game.
He deserves it and it has been a pleasure having both of you on the team!
Thanks
우주가 봄 리그 올스타 선수로 뽑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쉽게도 올스타 경기는 비 때문에 취소됐다. 우주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올스타 경기가 아니라도 앞으로 야구 는 실컷 할 수 있으니까.
타이거즈 전이 있던 날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렸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관중석에 오래 앉아 있으면 어느새 옷이 축축해졌다. 타이거즈는 우리 가족이 로스앤젤레스로 여행을 갔을 때 붙었던 팀이다. 당시에 우리 팀은 승리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번 타이거즈 전에는 벤과 존이 모두 나오지 않았다. 팀의 중심타자이자 간판투수인 선수 두 명 없이 경기를 치러야 했다.
우리 팀의 선발은 닉. 1회 초, 닉의 공은 제구가 잘 되지 않았다. 볼넷과 실책, 그리고 중심타자의 한방. 더군다나 타이거즈 팀의 4번 타자는 프리다였다. 프리다는 우주와 여름과 가을에 같은 팀에서 야구를 했는데 타격만큼은 내가 본 아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프리다는 정확도와 펀치력을 둘 다 가진 타자였다. 따라서 이 팀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리다 앞에 주자를 내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1회와 2회 두 이닝 동안 닉은 5실점 했다. 볼넷을 많이 내준 것이 화근이었다. 중심 타자 두 명이 빠진 우리 팀은 상대 투수에 눌려 4회까지 단 한 점도 내지 못했다. 5:0. 5회에 상대팀 선발투수가 투구 수가 차서 내려가고 새로운 투수가 올라왔다. 우리 팀 타자들은 바뀐 투수의 공을 잘 골라내며 볼넷으로 만루를 만들었다. 투 아웃 주자는 만루 그리고 4번 타자.
평소 같았으면 존이 타석에 들어섰겠지만 존이 없는 오늘의 4번 타자는 우주였다. 이번 타순이 지나가면 6회부터는 다시 하위타순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여기서 한 점도 뽑지 못한다면 역전은 어려워진다. 적어도 한두 점 정도는 뽑아야 다음 회에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걱정도 잠시 뿐. 우주는 초구를 받아쳤다.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3루타였다. 3루수 키를 넘어가는 빨랫줄 같은 타구였다. 5:3. 비록 다음 타자가 아웃돼서 추가 득점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역전의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3회부터 닉을 이어서 던진 우주는 6회까지 4이닝 동안 단 한 점도 주지 않았다. 바뀐 상대팀 투수들은 6회에도 여전히 볼넷을 남발했다. 6회 말 무사 만루에서 다시 우주의 타석이 돌아왔다. 타이거즈 감독이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마운드로 올라가서 투수에게 뭔가를 얘기했다. 이런, 만루임에도 우주를 고의사구로 걸렀다. 밀어내기로 다시 한 점. 5:4. 이후에 우리 팀은 아쉽게도 단 한 점만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5:5 무승부.
비록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팀의 주축선수들이 빠진 가운데 올린 소중한 무승부였다. 어쩌면 1승보다도 더 값진 1무였다. 경기가 끝나고 닉의 엄마인 스테파니는 관중석 벤치에서 내려오면서 우리 팀에 우주의 클론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5월 22일. 우리 팀은 양키즈를 상대했다. 3회까지 우리 팀 타자들은 사이드암인 상대 투수의 낮게 깔려 들어오는 공에 고전했지만 4회부터 바뀐 투수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4회에 우주는 역전 3루타를 기록했다. 5:1. 우주는 3, 4회를 무실점으로 막았고 우리 팀은 5회에 또다시 대량득점에 성공했다. 볼넷, 실책, 장타를 묶어서 무려 12점을 득점했다. 2시간 30분 룰에 의해서 5회가 마지막 이닝이 되었다. 우주는 감독님의 배려로 5회는 휴식.
내셔널즈의 경기력이 갈수록 좋아진다. 여전히 불안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3월에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수비력도 많이 좋아졌다. 세상에 완벽한 팀이 어디 있으랴. 매일 뚱한 표정으로 덕아웃에 앉아 있다가 다른 아이들과 말도 안하고 가끔씩 내게만 말을 걸던 우주도 팀 내 아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메츠 팬인 피카렐라는 오늘 경기 결과에 아주 만족했다. 왜냐하면 상대팀이 양키즈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피카렐라가 이기고 싶어 하는 양키즈가 하프할로우힐의 양키즈만은 아니었겠지만.
일주일 후에 우리 팀은 자이언츠와 경기를 가졌다. 저번 경기에서 우리 팀은 8:7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우주의 호투를 발판으로 초반에 승기를 잡은 것 까지는 좋았지만 볼넷과 실책으로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했던 것은 아쉬웠다. 벤이 선발로 나섰다. 1회는 잘 막았지만 2회에 야수들의 실책들이 이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볼넷, 실책, 적시타로 두 점을 내줬고, 아웃 카운트 하나만을 잡고 만루에서 내려왔다. 피카렐라는 우주를 마운드에 올렸다. 우주는 볼넷으로 한 점을 내줬지만 나머지 두 타자를 잘 막았다.
우리 팀 중심타자들도 상대 투수를 잘 공략해서 두 점을 만회했다. 2:3. 3회에도 우주가 올라왔지만 우리 팀은 실책과 볼넷으로 두 점을 더 실점했다. 2:5. 4회에 올라 온 존제이는 상대팀 타선을 5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았고 우리 팀은 한 점을 더 따라갔다. 3:5. 2시간 30분 룰에 의해서 5회가 마지막 이닝이 되었다. 5회 말 우리 팀 타자들은 참을성 있게 볼을 골라냈고 밀어내기로 한 점을 더 만회했다. 4:5. 투아웃 주자 만루. 타석에는 3번 타자 존이었다. 존이 친 타구는 완전히 빗맞았고 타석을 간신히 벗어나서 3루수 앞으로 천천히 데굴데굴 굴러갔다. 3루수는 1루 대신에 홈을 택했다. 결과는 아웃 ······ , 이었다가 판정이 번복돼 다시 세이프가 됐다. 포수가 공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세이프라는 심판의 판정에 상대팀 코치들이 항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1루에 있던 존은 베이스를 벗어나서 홈에서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 상대팀 1루수는 그런 존을 재빨리 태그 아웃시켰다. 심판은 아웃을 선언하고 경기를 종료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카렐라와 코치들이 인플레이 상황이 아니라고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 팀 코치들과 충돌이 생겼다.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큰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
애들이 하는 경기에서 어른들끼리 싸우다니. 항상 합리적일 것 같은 미국 사람들도 이런 분별없는 행동을 한다. 대체 야구가 뭐라고 참.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볼썽사나운 상황은 피카렐라에 의해 종료됐다. 홈의 득점은 인정됐고, 동시에 1루에 있던 존의 아웃도 인정됐다. 피카렐라는 심판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5:5. 조금은 아쉬운 두 번째 무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