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

by 생각의 변화

플레이오프


2라운드도 거의 막바지에 왔다.

6월 1일 우리 팀은 말린즈와 리그 1위를 결정하는 마지막 경기를 했다. 경기 초반은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3이닝 동안 존은 막강한 말린즈 타선을 단 한 점으로 막아내고 있었고 우리 팀 타자들은 상대 투수를 효과적으로 두들기며 8점을 냈다. 8:1. 전 경기에서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20점차로 졌던 것을 생각하면 야구라는 것이 참 변화무쌍하다. 물론 그게 야구의 매력이긴 하지만.

피카렐라는 4회에 우주를 마운드에 올렸다. 우주에게 4회와 5회를 맡겨 경기를 끝내려는 것이었다. 말린즈 타선이 강하기는 하지만 7점차면 여유 있는 점수 차였다. 더군다나 우주는 첫 경기 때의 우주가 아니었다. 그 동안 경험도 쌓였고 구위도 좋아졌다. 그러나 우주는 올라오자마자 처음 두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다. 불안한 시작이었다. 3번과 4번 타자에게는 2루타와 3루타를 맞았고 이후로도 볼넷과 실책, 그리고 적시타를 맞았다. 순식간에 다섯 점을 내줬다. 8:6.

피카렐라가 마운드를 방문해서 우주에게 계속 던질 수 있겠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우주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던질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주는 한 점을 더 내 주고 간신히 4회 말을 마쳤다. 4회가 끝나고 피카렐라는 우주가 5회에도 계속 던지고 싶어 하는지를 내게 물었다. 그가 보기에 우주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어서 도저히 던질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물어보자 우주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던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 5회에 우리 팀은 더 이상 추가점을 내지 못했다. 5회에도 우주가 올라왔지만 상황은 이전 이닝과 비슷했다. 우주는 한 점을 더 내줬고, 두 명의 주자를 더 내보냈다. 피카렐라가 다시 와서 우주를 바꿔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우주도 동의하고 내려왔다, 잔뜩 풀이 죽은 채로.

미국에서 야구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 팀은 우주 이후로 나온 투수들이 한 점을 더 실점했고 8:9로 역전패 했다. 충격적인 패배였다. 경기 결과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마도 우주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심각한 표정이었던 우주는 시간이 지나자 금방 나아졌다. 다음 날 연습할 때 우주에게 자이언츠 전 이후에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한 것과 새로 산 배트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린즈 전에서 우주가 부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연습 부족보다는 피로 누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 하더라도 휴식이 없다면 좋은 구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리그에서 정해 놓은 규칙에 따라 일정한 휴식기간을 갖긴 하지만 우주는 2라운드 동안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서른 개에서 오십 개의 공을 던졌다. 지칠 때가 된 것이다. 타격에서의 부진은 연습을 하면서 천천히 찾아가면 되지만 떨어진 구위가 금방 회복될 지는 미지수였다.

다음 날 피카렐라가 이메일을 보내 우주의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우주는 지금까지 너무 잘 해왔고, 누구나 잘 안될 때가 있으니 말린즈전 패배를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작 우주는 피카렐라가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피카렐라에게 이메일을 받을 즈음에 우주는 이미 전날의 충격에서 거의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우주의 일과는 비슷했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서는 늘 하던 반찬 투정을 했고, 누리에게 괜한 심술도 부렸고, 학교에 갔다 와서는 썬컴 파크에서 야구연습을 했다. 공을 제대로 안 던져 준다며 늘 내던 짜증도 냈다.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같은 반 친구를 불러서 놀았다.

비록 6월 1일의 역전패가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 경기 후에 나는 오히려 4:24로 패했을 때보다는 좀 더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스무 점차에서 한 점차로 줄었으니 말린즈와 한 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상대 팀의 타자들이, 특히 중심타자들이 그랬다, 우주의 공은 아주 잘 쳤지만 상대적으로 존의 공은 까다로워 했다.

존은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구위가 좋아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 팀에서 구위가 가장 좋은 투수는 우주가 아닌 존이었다. 타격에서는 코너가 단연 최고였다. 지난 말린즈 전에서도 코너는 뛰어난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존의 구위와 코너의 타격감이 유지된다면, 말린즈를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건 우주가 이전과 같은 기량으로 회복되는 것이었다.

6월 5일. 상대는 또 말린즈. 피카렐라는 이 경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이번 시즌의 순위와 플레이오프 대진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굳이 할 이유가 없었고, 며칠 후면 플레이오프를 시작하기 때문에 모든 팀들은 투수를 아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날 경기에서 우리 팀과 말린즈는 모두 주축투수들을 올리지 않았다. 우주는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고, 존과 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주는 3타수 3안타 4타점을 올렸다. 우리 팀이 10:8로 승리했다. 비록 말린즈가 전력을 다한 경기는 아니었지만 말린즈를 상대로 시즌 첫 승리를 거뒀고 우주는 새로 산 배트가 아닌 이전 배트를 다시 들고 나오면서 타격 슬럼프(우주는 올드 배트의 저주라고 했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이 보였다.

이 경기를 끝으로 봄 리그 정규시즌 경기는 모두 끝났다. 우리 팀은 10승 2무 3패로 말린즈에 이어 2위였고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7위 팀인 메츠와 첫 경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 팀이 플레이오프 1차전과 2차전을 승리하게 되면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말린즈를 결승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되길 바랐다. 아마 우주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피카렐라는 플레이오프는 이전과 조금 다른 투수운용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정규리그 중이었다면 플레이오프 두 경기 중 한 경기 정도는 반드시 우주를 선발로 기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 번째 메츠와의 경기는 존이 선발로 3이닝을 던졌고 우리 팀은 상대를 투타에서 모두 압도하며 13:0이라는 큰 점수 차로 이겼다. 우주는 6회에 등판해서 경기를 마무리했다. 투수 운용에 관한 피카렐라의 생각이 확실히 바뀌었다고 생각한 것은 플레이오프 두 번째 경기인 타이거즈 전 때였다. 우주는 타이거즈 전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타이거즈와의 두 번째 경기 때 우주는 4이닝 무실점에 4타점을 올리며 거의 질 뻔 했던 경기를 무승부로 만들었다. 아마 만루에서 우주를 고의사구로 거르지 않고 승부했다면 우리 팀은 승리했을 것이다.

내 생각엔 타이거즈 전에는 우주가 선발로 올라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우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타이거즈 전의 선발은 벤이었다. 벤은 3이닝동안 한 점만을 내줬고 이후에 던진 존도 4,5회를 한 점만 내주며 잘 막았다. 5:2.

6회에 존이 다시 올라왔다. 이건 전혀 예상 밖이었는데 아마 당시 피카렐라의 생각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하나는 존이 잘 던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투수로 바꾸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당시 우주의 구위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적은 점수 차에서 올리기에는 조금 불안하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또한 야구가 그렇듯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6회에 올라 온 존은 두 명을 볼넷으로 내보냈다. 무사 1,2루, 석 점차, 그리고 프리다가 버티고 있는 중심타선으로 연결되는 상황. 피카렐라는 투수를 우주로 교체했다. 우주의 첫 번째 투구 때 공이 바운드 되면서 2루 주자가 3루로 뛰었다. 하지만 포수가 잘 잡아서 3루로 송구. 아웃. 이제 아웃 카운트 두 개가 남았다. 하지만 투 스트라이크 원 볼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우주는 몸에 맞는 볼로 다음 타자를 내보냈다. 다시 1,2루.

타석에는 4번 타자 프리다. 다행히도 프리다는 초구를 건드려서 2루 땅볼로 아웃됐다. 하지만 다음 타자에게 내야 안타를 내주며 투 아웃에 2,3루. 우주는 아직도 가장 좋을 때의 구위와 제구력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자가 모두 들어온다고 해도 여전히 한 점의 리드가 있다는 것이고, 덧붙여 우리 팀에겐 아직도 한 번의 공격기회가 더 남아 있다는 것.

경기를 보는 이들의 머릿속이 여러 가지 걱정과 가능성으로 복잡해지고 있을 때 우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 팀이 원하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다음 타자는 삼진처리 되었고 내셔널즈는 결승에 진출했다. 우승을 위해서 남은 경기는 이제 단 하나.


(15화에서 계속)


IMG_2435.JPG 플레이오프 1차전(vs M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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