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by 생각의 변화

관중


세 번째 경기인 다이아몬드백스 전이 있던 날, 아이들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는 배팅케이지 옆에서 키이쓰(닉의 아빠)가 우주가 한국에서도 야구를 잘했는지 물었다. 한국에는 미국처럼 야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는 둥, 이런 일을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둥, 나는 그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고 동문서답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우주가 야구 하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아빠였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게 커밍아웃처럼 엄청난 용기를 내서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게 왜 미국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됐을까. 한국에서는 무관심한 아빠여도 떳떳했는데 왜 미국에서는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나의 부모님은 세 아들 모두에게 공평하고 헌신적인 분이었다. 아버지는 엄격한 군인으로 지냈지만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분이었다. 어머니는 의지가 굳고 추진력이 뛰어났지만 자기애가 강하고 경쟁심이 지나쳤다. 나는 삼형제 중 둘째였다. 형은 성격이 예측불가능하고 불같았다.

형이 사춘기를 보내는 동안 집안 분위기는 늘 살얼음판이었다. 어머니와 항상 충돌이 있었다. 형과는 달리 나는 별다른 충돌 없이 사춘기를 보냈다. 형이 어머니에게 대들고 싸우는 방식을 택했다면, 나는 어머니를(또는 그런 상황을) 피해 다니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동생과 나는 늘 형의 눈치를 슬슬 살피고 조심했지만 늘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종종 형에게 맞을 때도 있었다는 얘기다. 항상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던 동생은 학교에서는 시비 거는 아이들을 상대하느라(키 작은 남학생에겐 괜히 시비 거는 놈들이 많다), 집에서는 형의 눈치를 보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동생보다 상황이 조금 나았다면 그건 내게 또 다른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한 어머니와 불같은 성격의 형이 부딪히던 시절에 내가 마음의 평화를 찾았던 곳은 클래식기타 레슨을 받던 어느 가정집이었다. 남편이 취미로 집에서 기타 제작을 했기 때문에 현관에 들어서면 방금 깎은 나무 냄새가 났고, 거실에는 두세 대의 기타와 보면대가 놓여 있었다. 그곳은 집과 비슷하지만 집은 아니었고, 그분은 어머니와 비슷하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선생님은 눈이 크고 어깨가 조금 넓은 편에 약간 풍만한 몸매였는데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연주회에 가면 중학생이었던 나를 선생님의 아들로 착각하곤 했다. 선생님은 굳이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오해를 은근히 즐기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았는데 레슨이 끝나면 음악을 듣거나 선생님과 잡담을 나누며 한두 시간을 더 머물다 집으로 왔다. 선생님은 과일이 박혀 있는 하얀 생크림 조각 케이크를 내주시곤 했다. 나는 케이크를 먹으며 사과 궤짝만한 탄노이 스터링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비르투오소들의 연주를 들었다. 존 윌리엄스, 데이빗 러셀, 마누엘 바루에코. 크리스토퍼 파크닝. 음악을 듣는 동안 이상하게 엉덩이는 무거워졌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현실 속의 어머니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겐 강력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로맹가리가 그랬나, 압도적이고 강력한 현존. 현실 속의 어머니와 충돌하는 것을 피하는 내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듣는 ‘척’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 것. 대개는 통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가 있었으니 그건 연극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연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학교를 당장 때려치우고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평생 연극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저러실까.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어머니가 당신의 협박을 진짜로 실행에 옮길까 봐 두려웠다.


모든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객이거나 관중이다. 나는 어머니가 관객이길 원했는데 어머니는 ‘매니저’가 되고 싶어 했다. 언젠가 아내가 나를 평가하기를 남편으로선 70점 정도이고 아빠로서는 40점 미만이라고 했다. 아내의 평가가 박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이유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 무관심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애정이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자기중심성 또는 자기애로부터 시작된 과도한 간섭을 애정이라고 착각했다면, 나는 애정 없음으로부터 시작된 무관심을 너그러움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내 무관심 또는 너그러움은 어머니의 간섭과 통제에 대한 반발이었다. 얼핏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본질은 같았다. 왜냐하면 그건 어머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아들의 인생에서 관객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동시에 아들이 자신과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우주가 나와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우주를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우주가 내 인생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를 내 기준에 맞추려고 했다. 미국에서 새삼 알게 된 게 있다면, 우주는 내 삶에 끼어든 게 아니라 자신의 삶 또는 게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그 게임의 관중일 뿐.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를 야유하고 독점하려는 현실 속의 관중이 아니라 우리 팀의 부모들처럼 선수를 응원하고 축하하고 위로하고 안아 주는 관중 말이다. 우주가 하는 야구는 내게 그런 의미를 담은 은유였고 나는 조금씩 그 은유가 갖는 의미를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키이쓰의 질문에 내가 부끄러웠던 건 내가 현실 속의 관중이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현실 속의 관중.


우리 팀에 열세 번째 선수가 들어왔다. 코너 리차드슨. 하프할로우힐 리틀 리그 규정에서는 한 팀에 최대 열여섯 명까지 등록이 가능하다. 코너는 하위타순으로 들어와 외야수로 뛰었다. 코너는 눈이 크고 연약해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눈이 크고 말라서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타석에 서면 큰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매서운 표정으로 변했다.

벤이 결장했다. 친구들과 농구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다고 했다. 피카렐라는 벤이 빠진 자리에 우주를 넣었다. 우주는 선발투수 3번 타자로 출전했다. 첫 선발투수라는 사실에 들떠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두 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다섯 점을 실점했다. 실점이 많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다이아몬드백스의 타자들이 이전 두 팀의 타자들에서 비해서 훨씬 잘 쳤다. 잘 맞은 타구는 많지 않았지만 이 팀의 타자들은 어떻게든 공을 배트에 맞췄다. 다른 하나는 실책. 상대 팀 타자들은 공을 잘 맞췄고, 우리 팀 수비들은 공을 잘 놓쳤다. 볼넷도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실책이 많았다.

게다가 공을 놓치지 않고 잡는다 하더라도 3루수나 유격수 방향으로 가는 타구는 아웃이 될 확률이 떨어졌다. 맞더라도 1, 2루 쪽의 땅볼이어야 했다. 내야수들의 어깨가 약해서 1루까지의 송구가 짧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타구가 1, 2루 쪽으로 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오른손 투수는 오른손 타자(왼손 타자가 드물었다)에게 빠른 공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날 우주 공의 스피드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상대 팀의 투수는 체격이 굉장히 크고 공의 스피드가 빨라서 우리 팀의 아이들과 진짜 같은 나이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 였다. 주자가 없을 때에도 세트 포지션에서 던지는 특이한 형태의 오버핸드 투수였는데 스피드는 좋았지만 제구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기에는 조금 높은 공이었다. 기다리는 게 답이었다. 하지만 우주를 포함한 우리 팀 선수들은 상대편 투수의 스피드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나쁜 공에 손을 많이 댔다.

우주는 공을 맞추는 능력은 좋았지만 배트 스피드가 빠르진 않았다. 첫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5:0. 3, 4회에 우주를 이어서 던진 닉도 다섯 점을 실점했다. 10:0. 3회에 상대 팀 투수가 바뀌면서 우리 팀의 타자들은 힘을 내기 시작했다. 3, 4회에 다섯 점. 10:5. 3회 말에 우주는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는 깨끗한 안타로 타점을 올렸다. 5회에 마운드에 올라온 브렌트는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5회 말 하위타순에서 시작한 우리 팀은 볼넷과 안타를 묶어서 만루를 만들었다.

다음은 우주의 타석. 우주는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3루타를 쳤다. 우중간으로 빨랫줄처럼 빠져나가는 타구였다. 10:8. 열 점차로 벌어졌을 때만 해도 별로 승리를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우리 팀의 부모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두 점차. 대 역전극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속타 불발로 거기까지.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 후에 우리 가족은 5박 6일 일정으로 팜스프링스와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하기로 했다. 팜스프링스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긴 일정은 아니었지만 우주는 양키즈 전과 타이거즈 전 두 경기를 뛸 수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나 더 아쉬웠던 건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가 시티필드 구장에서 메츠의 영건 맷하비와 맞대결을 하는 경기도 볼 수 없다는 것(류현진은 7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다).

우주와 류현진, 둘의 경기를 모두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우리 가족은 로스엔젤레스 행 비행기를 탔다. 우주와 나는 여행 중에도 우리 팀의 경기 결과를 웹사이트에서 확인했다. 내셔널즈는 우주가 엘에이 스타디움에서 모자와 저지를 사고 있는 동안 양키즈를 이겼고,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롤러코스터와 투어 버스를 타고 있는 동안 타이거즈를 꺾었다. 4승 1패.


다이아몬드백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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