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ug 07. 2022

화인(火印)과도 같은 삶의 증거들

김영래 : 081 천사의 시집 

081 천사의 시집 

               김영래 


추락한 적 없는 천사들이 세운 지상의 도시에서 

붉은 책, 

악마의 책을 꿈꾸던 시인이 있었다. 

그 책은 완성되지 못했고, 대신 시인은 

추락한 적이 없는 천사들의 도시 한복판에서 썼던 

자신의 시들을 불태웠다.

장님이 되어 그 자신도 읽을 수 없는 시들이 

모두 불태워졌지만 시편들은 그의 가슴에 

태워버릴 수 없는 화인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그가 발설하지 않는 한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시집 한 권을 

시인은 생애의 끝까지, 무덤 속까지 품고 살았다. 

그 시집은 태워버릴 수 없었다.    


081 A Collection of Angels’ Poems

                             Kim, Young-rae


In an earthly city built by the angels who had never fallen

There lived a poet who dreamed of a devil’s book,

The Red Book. 

The poet, instead of completing the book,  

Burnt his poems

Written at the center of the city of angles who had never fallen.

The poems he, being blind, could not read

Were all burnt but their fragments, in his mind, 

Were engraved as an inconsumable brand. 

But the poet ever kept a collection of those fragmented poems

Which no one can read. and so long as he never reveals,

Never exists and has never, ever existed, to the edge of doom.

It could never be burnt. 


누구나 마음에 품은 시집이 있습니다. 기억 속의 오류와 절망, 실패와 좌절을 기록한 삶의 고백이자 참회록이었죠. 그것은 결코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지진 못했습니다. 언제 끝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삶의 심연에 닿아보지 못한 천사들의 도시에서 그는 마침내 마지막 피어리오드를 찍기보다는 그 영욕의 기억을 모두 불살라버리리라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단 하나의 의미도 찾을 수 없던 그 기록들은 날리는 불씨처럼 가슴에 날아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한 권의 시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결코 버릴 수 없는 낙인과도 같은 삶의 증거들이었으니까요. 


* 위의 영문은 김영래 시인의 시집 ‘가랑잎에 옮긴 2백 개의 비문’ 가운데 여든한 번째 시 ‘081 천사들의 시집’을 영역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 없는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