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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09. 2022

첫날밤 신부 같은 꽃  

김춘수 : 꽃을 위한 서시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The Prologue to Flowers

                  Kim, Choon-soo 


Now I am a dangerous animal. 

When I touch you,

You become an unknown, far-off darkness.


At the end of the wavering branch of existence

You bloom and fall without a name. 


In this nameless, tear-raising darkness

I cry all night 

Lighting the lamp of old memories.


My cry becomes a whirlwind out of the blue

Shaking the tower, 

And will end up a gold by the time it soaks into a stone.


... My bride hiding your face. 


내 아름다운 첫날밤 신부 같은 꽃. 손대면 꺼질 새라 바라보기만 하는 꽃. 그 꽃은 환희로 피었다 절망 속에 지고 맙니다. 이름도 모르는 꽃을 바라보며 왜 이리 눈물이 날까요. 아마도 먼 옛날, 그날의 추억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울다 보니 새벽이 가까워 옵니다. 그러면 나의 울음은 거친 바람이 되어 다시금 그 꽃을 뒤흔들어 놓겠지요. 하지만 내 눈물 그 꽃에 닿으면 황금 빛깔로 다시 피어날 것을 믿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나의 신부 같은 꽃. 당신은 영원한 아름다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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