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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5. 2022

내 마음속의 단풍나무

이지현 : 시간의 기억

시간의 기억

          이지현


누가 시간이 흐른다고 하였나

누가 시간이 약이라고 하였나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래 다가갔던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고 제 자리에 남았고

누군가를 잊기 위해 오래 걸었던 시간은

통증처럼 여전히 남는 법이지


바로 그것이 시간의 기억법

손가락을 쭉 뻗으면 그 사이로 달아나는 빛으로

언젠가는 꼬리 자른 도마뱀처럼 시간은 푸르게 사라질 것이지만

붉었던 시간 하나 툭 튀어나온 눈망울로 데굴거릴 것이어서

참으로 생은 국수 가닥처럼 길고 희끗하지만 잘도 끊어지지.


이제 시간을 기억하는 법은 마음 안에 단풍나무 한 그루 심어두는 일

가끔 까마득 잊어버려도 푸른 시간 속에서 붉은 소인을 찍어

마음에서 어느 마을로 부치는 동안 저녁의 시간이 까무룩 저물면

누군가 짧은 꿈속으로 한 발을 디디곤 하지.

아직도 시간의 흔적이 없는 푸른 머리 올이 생생한.


Memory of Time

              Lee, Ji-hyun


Who says time flows?

Who says time is medicine?

The time when I tried long to come close to somebody

Never flows but stays where it was.

The time when I walked long to forget somebody

Still remains as a pain.


That’s how to remember time.

Like the light running between the straight fingers

Time in blue will go away like a lizard with its tail cut

But the time once in red rolls about like bulging eyes.

Truly, life, though long and white like a noodle, is easily cut.


Now the way to remember time is to plant a maple tree in mind.

While the time in blue, though totally forgotten, is stamped red, and

Sent from my mind to a village, the time in the evening disappears in darkness,

When somebody, into my brief dream, walks.

I still vividly remember the blue hair with no trace of time.      


시간을 기억하는 때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 지내는 시간, 지낼 시간들. 모두가 잊히지만 여전히 생생한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고집스럽게 마음에 남아 아프게 하는 시간의 기억.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지만,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쏜살 같이 사라지지만, 드문 드문 국수 가락처럼 끊긴 채 여전히 눈망울처럼 날 지켜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푸르던 그 시간에 붉은 소인을 찍어 어딘가로 부칩니다. 받아볼 사람 없을지 몰라도 쓸쓸히 저무는 시간에 혹 누구라도 꿈길에 찾아올지 모르죠. 시간도 자취를 남기지 못한 내 마음속의 푸른 기억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으니까요. 이제, 남은 시간을 위해 마음속 한켠에 단풍나무 한 그루 심으려 합니다.  


* 위의 영문은 이지현 시인께서 8월 13일 브런치에 올리신 '시간의 기억'을 영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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