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사의 오류
1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다. 군대는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에게 포탄은 한 번 떨어진 곳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공격이 시작되면 이미 포탄이 떨어진 곳으로 피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같은 곳에 포탄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에 이 말은 사실로 굳어졌다. 포탄이 동일한 장소에 다시 떨어질 확률이 낮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수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포탄의 발사는 모두 개별적인 행동이므로, 포탄이 떨어질 확률은 모든 장소에 동일하다는 것이다. 주사위 놀이에서도 이러한 심리가 작용한다. 여섯 개의 숫자 가운데 한 가지 숫자가 계속 이어지면 그다음에는 다른 숫자가 나올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사위를 던져서 어떤 숫자가 나올 확률은 여섯 개 모두에 동일하다. 따라서 포탄이나 주사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확률의 측면에서 오류이다. 이것을 ‘도박사의 오류’ (Gambler's Fallacy)라고 부른다. 도박사들이 돈을 거는 방식이 이러한 그릇된 믿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과 관련된 우스개가 있다. 확률에 밝은 통계학자, 도박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처음 도박을 한 사람 가운데 카지노에서 돈을 딸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모두 빈털터리가 된다.’이다. 도박은 확률이 아니라 무작위의 요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상호 관련성이 있다고 믿고, 또한 한 범주에 속한 사건들의 전체 확률은 일정한 균형을 이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연에 기대는 환상
조선시대의 민담에 고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고래에게 먹혀 그 뱃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그 안에서 도박판을 벌인다. 옹기장수는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훈수를 둔다. 이 민담은 고래의 거대함을 말하는 일종의 ‘과장된 이야기’에 속한다. 고래가 얼마나 크면 그 뱃속에서 사람들이 살아남아 놀음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고래에 대한 이 이야기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면 내기를 걸고 놀음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힌 내기와 놀음에 대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신들의 내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지혜의 신 아테나가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내기를 건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고, 누구의 선물을 고르느냐에 따라 아테네의 수호신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포세이돈은 바위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을,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선물한다. 아테네 사람들은 올리브 나무를 선택했고 아테나가 내기에서 승리한다. 이렇듯 신화에까지 등장하는 내기는 도박의 원형이다. 둘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과 확률은 도박처럼 언제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확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환상으로 대체한다. 일확천금을 통한 인생역전의 꿈은 도박이 일으키는 환상이다. 그리고 그 환상의 기초는 지극히 불확실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이다. 도박과 우정을 그린 영화 ‘라운더스'(Rounders)의 대사는 도박에 거는 막연한 기대를 표현한다. “하지 않으면 잃는 것도 없지. 하지만 하면 딸 수도 있어.”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포우(Edgar Allen Poe)는 도박에 빠져 부모의 재산을 탕진하고 비참한 삶을 이어가던 자신의 친구 샘플과 그가 아끼던 고양이 이야기를 ‘샤워하는 고양이’라는 단편 소설에 담았다. 그 작품에서 포우는 이렇게 묘사한다. “도박꾼들은 이성을 신뢰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우연에 모든 것을 거는 자들이다. 황금을 거머쥐는 것은 우연에 결부된 행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연에 복종하는 것.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한 일체의 시도는 부질없다.” 포우 역시 평생을 가난 속에서 술과 도박에 빠져 살다가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였다. 도박은 현실에 좌절한 인간이 우연에 기대어 환상을 창조하려는 본능일지 모른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절규’라는 그림은 다리 위에서 공포와 절망에 빠져 절규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의 절박함을 보면서 우리는 지치고 나약한 우리의 내면 그리고 뭉크의 불행했던 삶을 떠올린다. 그리고 뭉크 역시 도박에 빠져 있었음을 상기한다.
파멸에 이르는 쾌감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여자와 술과 도박의 수렁에 빠져 살았다. 그는 술과 여자는 자신의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지만 도박에 대한 쾌감은 의지로도, 문학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도박 빚에 시달려야 했고, 그로 인해 감옥을 들락거려야 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원고료를 받아 서둘러 도박 빚을 갚아야 했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구술을 통해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도박 속의 감각 체계에는 문학 속의 상상 체계가 침범도, 구제도, 또 교감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도박은 돈을 딸 때뿐 아니라 돈을 잃을 때에도 쾌감을 준다. 그러나 그 쾌감은 절망과 파멸에 이르는 길일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노름꾼’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단 한 시간 안에 운명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여전히 내일의 도박에 미래를 건다. "내일,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렇게 도박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불확실한 가능성에 기대어 파멸의 길로 향한다. 사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 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에는 도박에 관한 얘기가 빈번히 등장한다. 러시아인들의 기질도 있었겠지만, 유럽의 변방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근대화가 늦었던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풍토도 도박의 확산에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6세 때 마차 정거장에서 즉석 복권을 한 장 산 것이 그를 도박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19세의 나이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프랑스 여류작가 사강(Francoise Sagan)은 어린 나이의 성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만과 방탕의 삶을 살았다. 두 차례의 결혼 실패 이후 삭막해진 그녀의 삶은 결국 그녀를 술과 마약, 도박으로 이끌었다. 한 번은 마약 복용 혐의로 법정에 서서 “나는 나를 파멸시킬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스스로를 파멸시킨 마지막 방법은 도박이었다. 집을 저당 잡혀 도박 밑천을 만드는가 하면, 하루 밤 사이에 수 억 원에 이르는 인세를 날리기도 하다가 마침내 파산하고 만다. 그녀는 도박을 일종의 정신적 정열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갖고 싶었던 카세트 레코더 하나 살 돈이 없었던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인생을 즐겼다.”라는 공허한 자기변명 속에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삶은 고독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절망적인 고독 앞에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권리’를 행사했는지 모른다.
뇌와 마음의 작용
도박이 유전적,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도박을 포함한 많은 정신적 중독현상들이 결국에는 뇌의 작용에 기인한다고 한다. 어떤 강렬한 쾌감의 기억이 뇌에 각인되면서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독 단계의 도박은 결국 뇌의 화학적, 신경학적 작용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도박에 중독되는 것도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도박은 여전히 마음의 문제로 회귀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도박에 빠지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변화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중독은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돈을 따게 됨으로써 관심을 갖는 단계(winning phase), 그리고 계속적으로 돈을 잃는 단계(progressive-losing phase), 잃은 돈을 필사적으로 보상하려는 단계(desperate phase), 마지막으로 모든 희망을 버리고 몰락하는 단계(hopeless phase)가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몰락에 이른 한 인생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 심리적 변화와 스스로에 대한 처절한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도박은 우리에게 실패한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다.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이다. 10대의 인터넷 사용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다. 더욱이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은 오늘의 젊은이들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사이버의 세계로 인도한다. 사이버 상의 수많은 게임들이 내기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에 사행성의 조장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버 머니가 돈의 관념을 희석시키고, 사이버 부자와 사이버 가난뱅이를 양산한다. 복권 한 장에 인생 전부가 도박으로 얼룩진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할 때 현대의 우리는 사이버 세계 속에서 수많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