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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처럼 떠오르는 심상(心象)

백석 : 흰 밤

by 최용훈

흰 밤

백석


옛 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White Night

Baek Seok


Over the stonewall of an ancient castle rises up the moon.

On an old thatched roof a gourd

Shines white like another moon.

It was such a night as tonight that a faithful widow in town once had herself hanged.


명징하고 단순한 그림이 그려졌다. 하긴 1912년생의 백석이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달과 박 그리고 수절과부가 목을 매달 둥근 밧줄 매듭. 그렇게 원형의 이미지가 흰색의 단일한 색채감 속에서 살아난다. 그런 밤이면 마음 깊이 남아있던 무언가 아린 추억의 심상(心象)이 달처럼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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