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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l 10. 2023

문학의 속삭임

문학 속의 기억할 구절들(2)  

1.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요란한 소리가 아니고 흐느끼면서

(T. S. 엘리엇, ‘텅 빈 사람들’: T. S. Eliot, ‘The Hollow Men’)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 시 ‘황무지’의 저자이기도 하다. ‘텅 빈 사람들’(The Hollow Man)은 일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25년에 발표되었다. 종교적 믿음의 혼돈, 절망과 무질서의 세상에서 엘리엇은 인류의 종말을 예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극의 끝은 조용히 흐느끼며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 말한다.    


2. Mother died today. Or, maybe, yesterday; I can’t be sure.


어머니는 오늘 돌아가셨다. 아니 어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확신할 수가 없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 Albert Camus, ‘The Stranger’)


카뮈는 인간이 부조리함을 느끼는 경우를 네 가지로 이야기 한 바 있다. 첫째, 기계적인 반복에서 오는 삶의 무료함, 둘째, 시간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사실, 셋째, 소통의 부재와 소외감, 넷째, 군중 속에서의 고독감.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이 네 가지 부조리의 경험을 통해 철저히 자신과 멀어지는 이방인이 된다. 살인의 이유를 태양 때문이라 말하는 그의 삶은 그 어떤 의미도 상실한 부조리의 세계 속을 배회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오늘일 수도 어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시간 속에서 오늘과 어제와 내일의 구분은 무의미할 뿐이다.


3. ...이것은 감기에 좋은 약을 만드는 방법이야; 이것은 아이가 되기도 전에 아이를 내다 버리는 방법이야; 이것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야; 이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물고기를 되돌려 보내는 방법이야. 그러면 네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것은 남자를 괴롭히는 방법이야; 이것은 남자가 너를 괴롭히는 방법이야; 이것은 남자를 사랑하는 방법이야; 이것이 먹히지 않으면 다른 방법들도 있지. 잘 안 된다 해도 포기하는 것에 대해 마음 쓰지는 말아; 이것은 하고 싶을 때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방법이고, 이것은 그 침이 네게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움직이는 방법이야.

(자메이카 킨케이드, '소녀': Jamaica Kincaid, ‘Girl’)


자메이카 킨케이드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리비언의 섬 안티구아(Antigua)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4살 때부터 학교를 다녔고 천성적으로 총명했던 그녀는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세 명의 남자 형제들이 태어나면서 그녀는 어머니가 그녀로부터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멀어진 엄마의 애정을 회복하기 위한 그녀의 열망은 킨케이드의 작품에서 주된 주제가 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식민지 흑인의 척박한 삶을 그대로 경험하였고 원주민들이 영국인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을 배워야 했다. 특히 남성 중심적인 캐리비언 사회에서 엄마의 역할은 그들의 딸들이 숙녀로 사회화되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징들이 킨케이드의 소설 ‘소녀’(Girl)에 잘 드러나고 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여성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말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4.

제가 먹었어요

그 자두를

아이스박스에

들어있던 것


아마

당신이

아침으로

남겨두었던 것 같아요


용서하세요

너무 맛있었지요

달고

시원했고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다름 아니라’: William C. Williams, ‘This is Just to Say’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다. 이미지즘 운동에도 참여했던 그는 명징하고 단순한 언어로 선명한 이미지를 창조한다. 1934년에 발표된 이 ‘쪽지’ 같은 시는 아이스박스에서 몰래 자두를 꺼내 먹은 것을 고백하고 있다. 일상적인 문체를 통해 그는 유혹, 죄의식, 에덴동산과 같은 기독교적인 주제를 상징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단순한 즐거움을 나타내려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된 자두 하나를 혼자 집어먹으면서 느끼는 사소한 미안함과 그 달콤하고 시원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이미지즘의 단순성을 보여주는 시이다.    


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없어. 그것들은 마음으로 느끼는 거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 Antoine de Saint-Exupéry, The Little Prince)


소설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하는 말이다. 헬렌 켈러의 ‘내 인생의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에 인용되어 그녀의 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 무수한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적인 일인가? 오감으로 느껴야만 믿으려 하는 실증주의적인 현대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 낯선 이의 친절,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어머니의 손길... 그것들을 어찌 가슴 아닌 다른 것으로 느낄 수 있는가?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본 것이 언제인가? 호수가의 흙길을 걸으며 새소리를 들어본 것은 또 언제인가? 그 모든 풍경과 냄새와 분위기를 가슴속에 품고 눈물 흘려본 것은 또 언제인가?    


6.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빠져있죠. 하지만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있답니다.

(오스카 와일드,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 Oscar Wilde, ‘Lady Windermere’s Fan’)


성공을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실패’, 둘째는 ‘가난’, 셋째는 ‘아픔’. 실패해보지 않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했으며,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보지 않고 어찌 성공을 바랄 수 있는가! 우리는 암울한 현실 속에 있으므로 밝은 빛을 찾으며, 슬픔에 사로잡힘으로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다. 실패의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성공이다. 냉소적인 유머로 사람들의 위선을 풍자했던 영국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가끔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별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 인간인 모양이다.   


7. 마음속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마야 안젤루, ‘나는 왜 새장 속의 새가 노래하는지 안다’ : Maya Angelou, ‘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여성작가 마야 안젤루(1928~2014)의 자전소설 ‘나는 왜 새장 속의 새가 노래하는지 안다’에 나오는 짧은 구절이다. 흑인 소수자로서 살아온 세월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새장 속의 새로 여겼는지 모른다. 억눌린 자의 강요된 침묵은 겪어본 자들만이 아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다. 안젤루의 이 작품 제목은 19세기 미국의 흑인 시인 폴 로렌스 던바( Paul Laurence Dunbar, 1872~1906)가 쓴 '동정'(Sympathy)이라는 시에서 따왔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아 언제 그의 날개에 상처가 나고, 그의 가슴이 쓰라린지, 언제 그가 창살을 두드려대며 자유롭고 싶은지 나는 알고 있네. 그것은 기쁨이나 환희의 축가가 아니라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보내는 기도,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21세기의 오늘에도 우리는 여전히 새장 속의 새인지 모른다. 자유를 그리워하며 절규처럼 노래하는 가련한 새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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