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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07. 2024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시인(1900~1929)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1900~1929)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Spring Is Like a Cat

                Lee, Chang-hee


On soft, pollen-like cat fur

Comes down the fragrance of fair spring. 


Through cat eyes round like a golden drop 

Flows the fire of abandoned spring. 


On cat lips calmly compressed 

Drifts the drowsiness of warm spring.   


On cat whiskers sharply extended

Joyfully plays the vitality of fresh spring.  (Choi) 


고양이는 여러 가지 미신까지 어우러져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물이거나 회피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문학에서도 고양이는 자주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되는데 어린 시절 읽었던 미국 작가 포우(Edgar Allen Poe)의 단편 추리소설 ‘검은 고양이’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공포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요즘처럼 고양이가 대접을 받았던 때가 있었을까? 여전히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고양이는 이제 강아지를 제치고 애완동물의 제일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된 데에는 유튜브 속에 표현되는 고양이의 모습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모든 동물의 새끼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화면 속의 새끼고양이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고양이는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24년에 고양이를 봄에 비유한 시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시 공부 자료 목록에도 들어있는 이 시 속에서 고양이의 털과 눈과 입술과 수염이 봄의 향기, 열정, 평화와 활력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 개도 고양이도 오늘날 같지 않았을 터인데 시인의 상상력은 세월과 세속의 금기마저 넘어서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젊은 부부의 유모차에서 살짝 고개 들어 동그란 눈을 반짝이는 그것이 아기가 아니라 새끼고양이였음을 보고 조금은 놀랐던 기억 속에 이 시가 겹쳐진다. 살금살금 다가오는 고양이 발걸음처럼 봄이 그렇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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