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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16. 2024

다시 꿈꿀 수 있을까?

사물의 꿈 1-나무의 꿈

사물(事物)의 꿈 · 1

       ㅡ 나무의 꿈


              정현종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빰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A Dream of Things · 1

   ---A Dream of a Tree


                by Hyeon Jong Chung


Kissing the sunlight flowing down on its leaves,

The tree is dreaming of its power,

Rubbing its cheek against the falling rain,

The tree is dreaming of the rain's blood with a sound.

By virtue of the blue power of the wind blowing through its branches,

The tree is listening to its whole life shaken.

                                 (Translated by Choi)


세상 모든 것들은 꿈이 있다. 강가의 돌멩이, 길가의 이름 없는 풀잎조차도 꿈을 가지고 있다. 밤하늘의 별도 한낮의 뜨거운 태양도, 검푸른 파도 넘실대는 바다도, 끝없는 초록의 물결 같은 깊은 숲도 꿈을 꾼다. 하물며 사람이랴!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 소중히 붙들고 가는 꿈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깥의 세상과 나를 낯설게 함으로써 잊혀가는 꿈이 있다. 그리고 그 ‘낯설게 하기’의 주체는 ‘늙음’이다. 늘어져 볼 품 없는 피부, 두터워지는 눈두덩, 하루하루 옅어져 가는 머리숱, 바닥에 앉거나 계단을 내려올 때면 언제나 느껴지는 무릎의 통증. 그리고 슬로 모션처럼 느려지는 팔다리의 무기력... 이 모든 늙음의 조짐들이 여지없이 지금까지의 삶을, 나의 모습을... 낯설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품어왔던 꿈들을 하나씩 세월에 띄어 보낸다.


시 속의 나무는 아직도 젊은 모양이다. 가지에 떨어진 햇빛을 들어 가만히 입 맞추고, 새삼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 새싹을 돋게 하는 따뜻한 햇살의 힘을 꿈꾸고 있으니까! 부드러운 빗줄기에 잎사귀를 비비면서 나무는 여전히 비의 ‘피’ 즉, 그것이 실어오는 생명의 환희를 열망하고 있으니까!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색깔은 푸르다. 다시금 나무의 젊음을 깨우는 것이므로. 그 바람이 스친 후 나무는 다시 깨닫는다. 자신의 삶이 요동치는 것을. 변화의 순간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그리고 그 소요(騷擾)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인다.


이 ‘늙음의 낯섬’에서 나를 끌어낼 햇빛은 있을까? 비와 바람은 내게도 내리고 불어올까? 그 누가 알 것인가! 우리의 은 그저 주변의 온갖 사물이 움직이는 대로 이끌려 살아온 것이니. 이제 또다시 나의 낯선 삶을 흔들어 놓을 또 다른 사물은 있을까? 나무처럼 꿈꿀 수 있을까? 그러면서 생각한다. 꿈은 의지(意志)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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