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Jul 06. 2024

경고 : 놀라지 마세요!  늙으면 이렇게 할 거니까

경고 : 제니 조셉

경고

제니 조셉


할머니가 되면 난 보라색 옷을 입을 거야

옷과도 나와도 어울리지도 않는 빨간 모자와 함께.

연금으로는 브랜디와 여름 장갑과 고급 샌들을 사고,

그러곤 버터 살 돈이 없다고 말할 거야.

피곤하면 길바닥에 주저앉고

상점 시식 음식을 마구 먹어치우고, 화재경보기도 눌러보고

지팡이로 거리의 가드레일을 긁고 다니며

젊은 날 맨 정신으로 못하던 짓을 해봐야지.

빗속을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며

남의 집 정원에서 꽃도 꺾고

침 뱉는 법도 배울 거야.


끔찍하게 지저분한 셔츠를 입고, 점점 더 뚱뚱해지고

한꺼번에 2킬로의 소시지를 먹다가

일주일 내내 빵과 피클만 먹을 수도 있어

펜과 연필, 맥주잔 받침 같은 것들을 상자에 모을 거야.


그러나 지금은 말쑥한 옷을 입어야 하고

집세를 내야 하고 길에서 욕할 수가 없으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지.

저녁에 초청할 친구들이 있어야 하고 신문도 읽어야 해.


하지만 이제는 조금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날 아는 사람들이 놀라고 경악하지 않도록.

내가 늙어 갑자기 보라색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


Warning

Jenny Joseph


When I am an old woman I shall wear purple

With a red hat which doesn’t go, and doesn’t suit me.

And I shall spend my pension on brandy and summer gloves

And satin sandals, and say we’ve no money for butter.

I shall sit down on the pavement when I’m tired

And gobble up samples in shops and press alarm bells

And run my stick along the public railings

And make up for the sobriety of my youth.

I shall go out in my slippers in the rain

And pick flowers in other people’s gardens

And learn to spit.


You can wear terrible shirts and grow more fat

And eat three pounds of sausages at a go

Or only bread and pickle for a week

And hoard pens and pencils and beermats and things in boxes.


But now we must have clothes that keep us dry

And pay our rent and not swear in the street

And set a good example for the children.

We must have friends to dinner and read the papers.


But maybe I ought to practise a little now?

So people who know me are not too shocked and surprised

When suddenly I am old, and start to wear purple.


영국의 여성 시인 제니 조셉이 1961년에 쓴 시입니다.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선정된 바도 있는 이 시의 제목은 ‘경고’입니다. 나이가 들어 늙으면 젊은 시절의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노년의 방종과 자유를 위해 살 것이라는 선언이면서 그런 나를 보고 놀라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지요. 시의 화자는 이제 곧 초로의 나이에 들어서는 중년의 여성으로 보입니다. 세간의 이목, 절제와 제약으로 보내온 젊은 시절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노년. 그것에 대한 강한 메시지로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시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니 제 나이 역시 시에서 얘기하는 노년의 나이가 되어버렸네요.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나이 들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싫을 이유는 없지요. 남의 눈에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못 입어본 화려한 색의 재킷을 걸치고 스카프도 매고, 중절모자에 파이프까지. 이만하면 눈에 띄는 노년의 신사가 되지 않겠어요? 좀 웃기기는 하겠네요. 아무튼 제 멋대로 옷을 입은들, 마구 먹어 대서 살이 좀 찐들, 머리가 좀 벗어진들 어떻겠어요. 노인이 되었으니 굳이 남의 눈 의식할 필요 없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실제로 나이가 들고 보니 시 속의 중년 여인이 얘기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여전히 세금은 내야 하고, 아직도 젊은이들의 눈길을 의식하고, 함께 할 친구가 그립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궁금해 하루 종일 유튜브에 귀를 기울이니 말입니다. 나이 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신선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게 되기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네요. 제가 보라색 옷을 입고 길에 침을 뱉고, 먹을 것에 미친 듯 달려든다면 아마 날 치매노인쯤으로 보지 않을까요? 허허 참 세상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요. 그래도 혹시 누군가 저를 아는 분이 저의 이상한 모습을 보시더라도 제발 놀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거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갈대, 속으로 우는 울음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