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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4. 2024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마음 데우기' : 이지현

마음 데우기

        이지현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손가락이 뭉툭한 여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칡뿌리처럼 거친 손가락으로 굽던 고등어 한 마리와

비계가 더 많았을 삼겹살 굽는 냄새

얼큰하게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쏟아졌다.

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그에게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떠먹이고 챙기던 마음이 부옇게 떠오른다.

노곤하게 지쳐가는 일생들이 흐르는 지하철 안에서

순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 더운 것은 무엇인가.

열 손가락에 슬린 온갖 삶의 풍경

그 마음을 알 수 없던 시절의 맛만 취하던 내가 보이지만

아직도 나는 오래 닳은 손마디가 전하던 깊은 심연을

함께 들어가 볼 수 있을까.


국밥이 왜 그리 뜨거워서 마음을 데는지 알게 된 밤이었다.  


Mind Warming

           Lee, Ji-hyun


On my way back home on the last train,

I feel a horny-handed woman sitting beside,

Reminding me of a mackerel broiled by her rough fingers like arrowroots,

The smell of oily grilled pork meat,

And hot, spicy stew poured into a bowl.

Immediately dozing off in her seat, she is dimly seen to

Feed and care the unknown people.

In a station of the metro where tired lives are streaming,

Something warm rises up like a haze.

In all the scenes of life touched by ten fingers,

I see myself absorbed in the ignorance of that mind.

But can I accompany it to see into the depth

Shown by the worn-out fingers?


The night I found out why our minds are burnt by that hot, spicy stew.

(Translated by Choi)


‘지하철역에서’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유령 같은 얼굴들을 보았다. 젖은 검은 나뭇가지 위에 놓인 꽃잎들을 보았다. 무표정한 백색의 가면을 쓴 군중들. 그들과 함께 나도 얼굴을 가린다. 일상에 지친 피곤한 군상들... 시인은 그 삶의 장면들에서 문득 따뜻함을 느낀다. 거친 손마다의 졸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더운 마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이지현 시인의 시는 내게 따뜻함보다는 아련하고 희미한 마음속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맵고 뜨거운 국밥처럼, 삼겹살과 고등어 굽는 냄새들처럼 왠지 친숙하지만 잃어버린 그날의 장면들이 스쳐간다. 벌써 이만큼 왔는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친 아이처럼, 숨바꼭질하다가 잠들어 버린 아이처럼 새삼 당황스러운 삶의 자취들이 나를 휘감는다.


오늘 나는 뜨거운 국밥을 앞에 놓고 묻는다. “그 따뜻함을, 그 애잔한 흔적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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