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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25. 2024

잠든 양심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한다. 법이야 조문화되어 쓰여 있으니 문제 될 것 없고 양심이라는 단어가 오묘하다. 양심이라... 우리는 간혹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혼동한다. 개인의 신념이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지만 양심은 다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이해되는 선(善), 혹은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거친 비유가 되겠지만 배곯는 아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은 잠시 양심을 숨겨둔 것이지 개인의 신념에 반한 것은 아니다. 복수를 위한 살인은 개인적으로는 정당하다고 믿어지겠지만 그러한 왜곡된 신념은 법과 양심 모두에 의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폴란드 출신의 영국작가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는 “우리가 배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양심뿐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쓴 소설 ‘로드 짐’(Lord Jim)에는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낡은 화물선이 등장한다. 모두가 잠든 밤, 배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침몰은 시간의 문제다. 이 사실을 안 선장은 승객에게 알리지 않고 작은 구조선을 띄워 선원들과 함께 탈출한다. 법으로도 양심으로도 인륜을 어긴 사악한 범죄다. 선장은 혹시 배의 침몰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이 있었던 것일까?


“좋은 친구, 좋은 책 그리고 잠든 양심: 이것이 이상적인 삶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농 섞인 말이다. 양심은 참 귀찮은 존재이다. 법이야 약간 구부리고 달리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양심은 언제나 한 곳만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양심의 가책(呵責). 꾸짖을 '', 꾸짖을 ''. 꾸짖고 또 꾸짖다. ‘책’은 자신의 책무라는 뜻도 있으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했을 때 느끼는 양심의 꾸짖음이다. 그러니 못난 인간들에게 양심은 잠들어 있어야 편한 존재이다.


요즘은 법조문만큼이나 양심도 잘 구부러지고 휘어진다. 자신의 신념, 믿음을 내세워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다. ‘양심의 법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자신의 왜곡된 믿음, 개인적 사리사욕이 양심을 파괴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스스로의 양심을 따랐다고 말한다. 인간이 만든 정치이고 인간이 만든 사법(司法)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에 빠진다고 했던가. 그래서 계약에 라 법을 만들고 규약을 만들고 스스로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던가? 사람들은 그 계약을, 법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 그 추상같은 법의 힘이 무서워서. 그런데 법 이외에도 무서운 것이 생기고 말았다. 판사의 양심. 오늘의 판사는 현대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되어 가는가? 그들의 양심은 세상의 모든 보편적 관념과 믿음을 넘어서는 것인가?


그들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그들이 한다. 오늘의 우리 정치는 판사의 판결에 좌우될 만큼 타락하고 취약해졌다. 그리고 백성들의 삶을 좌우하는 그 정치가 판사의 양심에 맡겨지고 만 것이다.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 그들도 한갓 인간일 뿐인데.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일 뿐인데. 옳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 그들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긴 어디 판사들뿐이겠는가. 교사도 의사도 변호사도 검사도... 아니 누구라도 잠시 자신만의 판단을 추고 귀 기울이라. 양심의 소리를. 나도 너도 양심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픈 양심이 소리를 지른다. 잠든 양심을 깨우라. 뒤돌아 후회와 가책만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양심과 가책

        폴 던바


“잘 가” 내가 양심에게 말했다.

“영원히 안녕.”

그리고 나는 양심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얼굴을 돌렸다.

몹시 상심한 양심은 그날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영혼이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올 때

나는 외쳤다. “돌아와 줘, 나의 양심

너의 얼굴이 보고 싶어. “

하지만 양심도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수 없어.

내 자리에는 가책만이 앉아있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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