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거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시대. 데스크 탑, 랩 탑, 아이패드에 스마트폰까지 모든 것이 정보화되고 무엇이든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스마트폰 하나면 은행업무, 상품의 주문, 즉각적인 대화와 정보의 공유... 우리의 삶은 너무도 편해졌다. 굳이 발품을 팔아야 할 일도 없고, 누군가와 연락이 안 되어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다. 정말 좋은 세상이 왔다.
오래전 ‘타임스’라는 영어잡지를 학생들 수업 교재로 삼은 일이 있다. 거의 삼사십 년 전의 얘기다. 요즘엔 이 잡지를 읽는 독자가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지식인이라면 타임스 하나 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시사 잡지 속에는 모르는 어휘들이 많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대규모 록페스티벌인 ‘우드스톡’이 뭔지도 잘 몰랐으니까. 한 번은 ‘포비든 시티’(Forbidden City)라는 영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원어민 강사도 ‘글쎄?’하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겨우 어찌어찌 중국의 ‘자금성’을 영어로 그리 표현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안도하며 강의실에 들어간 적도 있다. 검색창에 단어만 치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요즘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디지털 덕분에 모든 것이 쉬워졌다. 게다가 AI는 필요한 정보를 즉석에서 설명해 주고 대신 글까지 써주니 이 무슨 상전벽해(桑田碧海)인가!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의 영역이었을 뿐이다. 내비게이션, 구글 지도, 카카오 톡, 텔레그램 대화방, 통역 앱. 그 모두가 미래의 것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한 세대 만에 벌어진 이 변화들은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가히 과학기술의 대혁명이었다. 학위논문을 손으로 쓰고 몇 차례의 가필 후에나 겨우 타이핑을 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타이프라이터로 치다가 오타나 탈자가 나면 수정이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기함을 할 일일 것이다. 분명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우린 과거와는 아주 다른, 모든 것이 쉬워진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 피워낸 달콤한 열매가 아닐 수 없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썩 개운치 않은 것은 나이가 든 탓일까? 옛 것에 익숙해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문명의 이기(利器)들에 대한 무지 때문일까? 아무튼 무언가 모자란 듯한,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며칠 전 오랜만에 안국역 부근 북촌이란 곳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곳에는 종로 거리의 대형 빌딩들이나 강남의 고층빌딩과는 다르게 낮은 건물과 작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사십 년을 이어온 ‘브람스’라는 찻집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마룻바닥의 나무들이 처음 개업 때의 그것이라니! 물론 칠도하고 수리도 했겠지.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못 보던 건물이 솟아오르는 요즘에 한 곳에서 사십 년, 모습도 크게 변치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니. 보나 마나 나이 든 단골들이 옛 추억을 되살리며 앉아있겠지 하며 들어간 그곳에는 20대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이건 뭐지? 옆에 스타벅스도 있고, 새로 생긴 카페들도 많은데 왜 굳이? 이뿐 아니었다. 헌법재판소를 끼고 걷다 보니 행인들 대다수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친구와 내가 제일 고령이 아니었을까? 그곳이 핫 플레이스가 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종로나 강남, 명동의 마천루들에 싫증이 난 모양이지. 복고가 유행인가? 이 디지털 시대에 젊은이들이 왜 이 작고 복잡한 거리에 나타난 걸까?
디지털 시대의 온라인 문화는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누군가를 보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하루는 별 지장 없이 흘러간다. 그런 가운데 아날로그를 원하는 마음도 함께 생겨난 것은 아닐까? 추억에 젖은 노인들 말고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닐까? 뭔가 계시(啓示)적이다. 세상이 온통 온라인과 인공지능으로 뒤덮여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속에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만나서 정을 나누는 옛 정취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난 살롱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귀족이나 부호들이 드나들던 그런 것 말고 사람이 그리워 모이는 그런 곳 말이야.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인사하고 웃고 이야기하는 그런 곳. 우연히 생각이 맞으면 친구가 되고, 혹 외우고 있는 시(詩)한 편을 함께 나누는 살가운 살롱. 디지털 말고 아날로그로, 온라인 말고 오프라인으로 만나 체온을 느끼는 그런 곳. 젊은이들만 클럽을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우리가 가면 분위기를 깰 테니까 오프라인 좋아하는 사람들 모이는 살롱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나 만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