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배우자 혹은 그 공적 역할을 하는 여성을 가리켜 미국에서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y)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라 칭하면서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국모라 부르기도 하였다. 전제 군주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 직후에 새로이 맞이한 공화국 체제에서는 여전히 과거 군주제의 잔재가 남아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영부인(令夫人)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어 왔다. 국가 원수의 부인에 대한 경칭이었다. 요즘에는 그 표현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생겨 ‘~여사’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초대 워싱턴 대통령 이래 공식, 비공식적으로 ‘퍼스트레이디’라는 호칭이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다. ‘제1의 여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부인에 대한 상당한 존칭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미시즈 프레지던트’(Mrs. President)라 불리지만 ‘퍼스트레이디’는 여전히 국가원수와 그 배우자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국가원수이며 행정부의 수반이고 국군 통수권자이다. 국민들로부터 국가를 통치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그것이 헌법의 정신이고, 대통령제 국가의 정치체제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그의 배우자에 대한 존중의 호칭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들---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미혼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제와하고)...에 대해 이 나라를 이끈 정치 지도자로 여기고 그분들의 배우자들에 대해서도 존중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왜 이리 논란이 많은가? 전임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도 마찬가지이다. 두 대통령의 부인들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존중의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경멸과 모욕의 언사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래도 되는가? 무엇이 우리의 정치를, 국민의 여론을 이리도 척박하게 만들었는가?
대통령과는 달리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대통령의 배우자는 선출된 공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공직을 수행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부인은 가정을 돌보는 주부이면서 동시에 남편인 대통령의 공식, 비공식 행사에 함께하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내조의 역할이다.
또한 대통령의 부인은 한 국가에서 가장 알려진 여성이며 직간접적으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고, 미칠 수 있는 인물이다. 미국의 경우 배우자의 역할은 성품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점차 확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링컨대통령의 부인 메리 토드 링컨(Mary Todd Lincoln)은 해방된 노예들의 교육과 고용, 주택문제 해결에 노력하였다.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의 부인 헬렌 태프트(Helen Taft)는 근로환경의 안전성을 검토한 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보건과 안전에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퍼스트레이디의 업무를 위해 공식적인 보좌진이 임명되기도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는 비서진을 꾸린 최초의 퍼스트레이디였고,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는 언론 비서관을 따로 두기도 하였다. 카터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카터(Rosalynn Carter)는 연설문 작성자, 비서실장까지 두어 퍼스트레이디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오늘날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은 전 세계적인 이슈들---환경, 볼런티어 활동, 여성 인권, 문맹 퇴치, 약물 중독의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Laura Bush)는 공공도서관, 교육, 국립공원 등의 분야에 기여하였고,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셀 오바마(Michelle Obama)는 건강식과 운동을 통한 아동 비만 문제 해결에 노력하였다.
퍼스트레이디들은 의상이나 패션 등에서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클리브랜드 대통령 부인의 헤어스타일은 많은 여성들의 모방의 대상이 되었으며 심지어 광고업자들은 그녀의 이미지를 활용해 상품 판매를 촉진하기도 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부인은 1952년 미국 의상협회에 의해 베스트드레서로 선정되었고, 전국적인 패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은 미모와 세련됨으로 유럽인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남기도 하였다.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은 그들이 대표하는 국가의 상징으로 존중되어야 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종종 퍼스트레이디들은 너무 나선다거나 적절치 못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이나 말은 언제나 찬양과 비난의 대상이다. 그만큼 논쟁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상의 규정 없이 그들의 역할을 스스로 규정하고 수행하여야 한다. 그 범위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없다. 아마도 가장 확실한 이정표는 국민들의 믿음과 보편적 정서일 것이다.
대통령의 배우자는 공적인 존재이다. 적어도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사적인 기호나 주장보다는 공공의 이익과 선을 앞장세워야 한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한국의 영부인들에 대한 논란은 지나친 듯하다. 불확실한 정보에 기초해 현직, 전임 대통령의 배우자들을 무한대로 폄훼하고 경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국격의 훼손이며 개인에 대한 인격 살인이다. 물론 대통령의 배우자들은 당연히 말과 행동을 삼가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아내로서의 여성성마저 마구잡이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도 말이다.
누구나 권력을 잡으면 달라지는 것일까?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영예이고 자부심이다. 동시에 그것은 민족과 국가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역사의 막중한 소명이다. 수천만 국민의 삶과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개인의 이익과 삶은 공적인 소명 의식 앞에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 불가능한 일인가? 단순히 권력을 얻기 위해서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위대함보다는 희생하고 양보하는 도량 있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부인에게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