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심장을 먹는 생명체
'사막에서' : 스티븐 크레인
In the Desert
Stephen Crane
In the desert
I saw a creature, naked, bestial,
Who, squatting upon the ground,
Held his heart in his hands,
And ate of it.
I said, “Is it good, friend?”
“It is bitter—bitter,” he answered;
“But I like it
“Because it is bitter,
“And because it is my heart.”
사막에서
스티븐 크레인
사막에서
나는 벌거벗은 야만의 생물체를 보았소.
그것은 땅 위에 웅크리고 앉아
손에는 자신의 심장을 들고 있었지.
그리곤 그것을 먹었소.
내가 물었지. “맛있는가, 친구?”
“쓰디써.”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좋아.
“쓰기 때문에.
“또한 내 심장이니까.”
나는 무리에서 버려진 유목인처럼 황량한 사막을 걷는 기이한 족속이다. 그 사막에서 나는 벌거벗은 생명체를 만난다. 그것은 ‘걸리버 여행기’ 속 야후처럼 야만스럽고 탐욕에 빠진 생명체이다. 나는 그것을 친구라 부른다. 나와 같은 종(種)이다. 그것은 자신의 심장을 먹는 괴물이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막 가운데의 생명체. 나는 기꺼이 그것과 하나가 된다.
심장이 맛있느냐 묻는다. 자기 파괴의 변태적 행위를 보며 마치 함께 나누는 음식의 맛을 묻듯 기괴한 질문을 던진다. ‘쓰디쓴’ 심장. 자신을 물어뜯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 역한 자학의 순간 나인지 그 생명체인지 모를 누군가의 대답이 돌아온다. ‘써서 좋아.’ ‘나의 심장이라서 좋아.’
인간은 심장을 잃었다. 그것 없이 온몸에 차가운 푸른 피가 돌고 있다. 그 괴물과도 같은 생명체는 제 심장을 씹어 삼킨다. 죽음 이전의 고통. 그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스스로를 망치고 해치는 매 순간마다 그 맛은 얼마나 썼을까? 그럼에도 어리석은 파괴 앞에 동질감을 느끼는 나라는 인간. 심장의 맛은 쓰겠지.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겠지. 그럼에도 그 잔혹한 행위를 계속하는 우리는 자신의 심장을 먹은 후 또다시 누구의 심장을 노릴까?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19세기 미국의 천재 작가 스티븐 크레인의 이 시는 인간의 본질, 삶의 진실 그리고 더욱더 흉포해진 인간들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사막에 웅크린 채 스스로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그들. 21세기의 리바이어던이 된 인간, 자멸의 끝에서 쾌락을 찾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들. 피 흘리며 사막을 걷는 버려진 유목인의 후예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