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위선 사이

by 최용훈

“감정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말라. 그렇게 한다면 진실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수상이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의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상대방에게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분노, 원망, 경멸, 의심 등 부정적인 감정을 폭발시키고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무 감정에 치우쳐 지나친 말을 했어. 미안해.”


그 사과가 상대의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 할지는 몰라도 이미 드러난 말과 행동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러니 자신의 감정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자신의 본심이 그릇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거나,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이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다는 것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감정의 표출은 실수일지는 몰라도 내면에 담고 있던 진실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매우 경솔한 행동이었거나, 상대를 격동시키기 위한 비열한 행동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은 신중해야 하고 억제되어야 한다.


사과 역시 마찬가지다.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혹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마지못해하는 사과는 결코 사과가 아니다. 그것은 구실이고 변명일 뿐이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이 그릇되었음을 인정하지 않는 한 사과는 또 다른 비겁한 회피인 것이다. 그래서 사과는 어려운 일이다. 이미 상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는 ‘하버드 심장 편지’(Heart Letter)라는 연재물을 발행한다. 말 그대로 심장의 건강을 위한 글이다. 그곳의 선임편집자인 줄리 콜리스(Julie Corliss)가 2023년 12월 호에 ‘진정한 사과의 기술’이라는 짧은 글을 게재했다. 그 글에서 그녀는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학장이었던 심리분석가 아론 라자르 박사(Dr. Aaron Lazare)의 글을 인용해 올바른 사과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소개한다.


첫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에게 가한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모호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피해야 한다. “어쨌든 미안해.” “실수했어.” “좋아. 사과하지. 난 네가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일지 몰랐어.” 이런 표현들은 오히려 상대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스스로도 그것이 사과로 들리지 않을 테니까.


둘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라.


즉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내가 지나쳤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내 잘못이야.”라는 따위의 말들은 상대로 하여금 “그래서 뭘 잘못했는데?”라는 반응을 유도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결코 변명은 삼가야 한다.


셋째, 진심으로 참회의 뜻을 표하라.


잘못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것이다.


넷째, 자신의 말과 행동을 고칠 것을 약속하라.


만일 당신의 잘못으로 상대가 물질적인 손해를 입었다면 그것을 변상하고 회복시켜야 한다.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그가 겪었을 고통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더욱 조심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줄리 콜리스가 예로 든 사과의 표현:


“어제는 내가 이성을 잃었어. 일에 대한 압박이 너무 심했었나 봐. 하지만 내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 널 사랑하고, 앞으론 나의 고통을 네 탓으로 돌리는 일이 없도록 더 노력할게.”


“내가 잊었었네. 내 잘못에 대해 사과할게. 절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내가 뭘 해야 할까?”


미안한 감정에 대한 적절한 표현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 그것이 진정한 사과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사과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순간의 불편함에 대한 회피나 변명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상대를 기만하는 위선일 수도 있다. 사과하려면 제대로 분명히 하라. 그렇지 않을 거면 사과하지 말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라.


나의 이기적인 감정의 분출과 그릇된 사과에 상처를 입었던 모든 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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