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숙녀가 되는 것과 같다.”

by 최용훈

스포츠에서는 힘(power)을 근력(strength), 지구력(endurance), 민첩성(agility)으로 구분한다. 흔히 우리는 무거운 것을 번쩍 들어 올리는 힘 즉 근력을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래 달리기처럼 일정한 일을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버티는 힘, 자극에 반응해 재빠르게 움직이거나 신체의 위치를 바꾸는 능력 등이 모두 합쳐져 ‘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군가 실망하고 좌절하면 ‘힘을 내’라고 격려하고 위로한다. ‘힘’에 대한 운동학적 구분은 우리의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근력’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닌 물리적 힘을 얘기한다. 즉 돈이나 권력, 배경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삶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돈을 벌고 싶어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고, 넓은 인맥을 쌓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턱걸이를 통해 팔의 힘을 키우고 스쾃을 통해 하체의 힘을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일체의 행위는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지구력은 어떤가? 우리의 삶이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고 평탄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종종 마라톤에 비유된다. 뛰다 보면 평평한 길만 있지 않다. 때론 언덕을 오르고 때론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그걸 버텨내야 또다시 평탄한 길을 달릴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순간적인 힘보다는 은근한 끈기가 필요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거나, 짧게 힘을 쓰고 버려두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쁜 일들은 모두 버티는 힘으로 극복된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말이다. 하긴 그가 남긴 로마의 건국신화 ‘아이네이스’(Aeneas)는 10년에 걸쳐 집필하다가 그가 죽음으로써 미완성으로 남겨지기도 했으니. 하지만 ‘지구력’은 어려운 일을 버텨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난과 인내를 통해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아이네이스’는 미완성이었으나 오늘날까지 숭앙되는 대서사시로 남아있다. 그래서 ‘지구력’은 ‘근력’보다 더 강력하다. 인내가 아름다움보다 더 강한 것처럼.


‘민첩성’은 종종 유연성, 혹은 적응성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상황에 대한 기민한 판단과 유연한 대처를 가리킨다. 고집이나 아집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사실 폭발적인 힘은 순전히 근육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힘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팔과 다리를 얼마나 신속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근력이 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그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라. 그들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알고 있다. 솟아오른 채 강력한 스파이크를 내리꽂는 배구선수, 온몸을 활처럼 휘어 장대를 넘어서는 높이뛰기 선수, 클라이밍 선수들의 절묘한 신체의 확장과 수축... 자신의 몸을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수없이 많은 훈련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일인 것이다.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도전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유연하게 그것들에 적응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지 모른다.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해 주변의 여건을 도외시하는 것은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현명한 태도는 결코 아닌 것이다. ‘빨리, 자주 실패하라’라는 말은 실패를 권유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실패를 겪었을 때 취해야 하는 신속하고 유연한 전략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겪은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단지 효과가 없는 10,000개의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복종하기 싫은 사람은 명령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마키아벨리) 명령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명령은 자신의 힘을 드러내어 타인을 억압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노자(老子)의 말처럼 남을 지배하는 것은 물리적인 힘일지 몰라도 진정한 힘은 자신을 지배하는 힘이다. 반드시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억제하고 올바로 힘을 행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힘을 갖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용기, 사랑, 배려, 정의, 자신감의 힘이다.


“힘은 숙녀가 되는 것과 같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이 숙녀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결코 숙녀가 아니지요.”(마가렛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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