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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08. 2024

그 지옥에 햇살을

‘햇살’과 관련된 우스개가 있다. 설교법을 강의하는 신학교의 강의실. “천국을 얘기할 때는 얼굴을 햇살을 향하게 하세요. 은총이 가득한 천국의 환희를 나타내는 거죠.” 교수의 이야기에 한 학생이 물었다. “지옥은요?” 곰곰이 생각하던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냥 맨 얼굴로 해요.” 생각할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의 얼굴은 곧 지옥인 모양이지. 그런데 그 지옥에 햇살을 비추면 천국이 되는 거야. 그래서 “당신은 나의 햇살”(You are my sunshine)이라는 노랫말이 있는 모양이다.


“햇살 쪽으로 얼굴을 두면 그림자는 언제나 뒤에 드리워진다.” 미국 시인 월트 휘트만의 말이다. 그렇지. 햇빛을 향하면 그림자는 뒤에 생기지. 참 좋은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밝음을 앞에 두고 어두움은 뒤로 물리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햇살을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구름이 가리고 비가 내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다시 해가 모습을 나타내고 비가 그치면 무지개와 함께 햇살이 비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햇살은 하늘에서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 어머니의 그윽한 미소, 빗소리와 함께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 물감 냄새 가득한 아틀리에의 그리다 만 그림과 석고상들, 눈 내린 겨울 초막(草幕)의 아랫목, 계절과 상관없이 수줍게 피어난 꽃들, 익어가는 고구마의 달콤한 냄새... 무수히 많은 햇살이 우리 곁을 비춘다.


먹구름 가장자리에 생기는 실버 라이닝. 그것 역시 밝은 햇살 못지않게 생명을 역동시킨다. 희망이라는 햇살, 의지와 사랑의 햇살, 친구와 가족이라는 사람의 햇살. 그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에 얼굴을 향하지 않고 애써 등 돌려 우리 앞에 그림자를 만든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따라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간다. 도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보지 못한 채.


쓸쓸한 날들, 납빛 하늘

어디서 시작할지 모를 그때,

머리가 아프고 가슴에 눈물이 흐를 때,

당신 안에 있는 햇살을 찾아요.


당황스럽고 무서운 꿈을 꾼 뒤

거의 무너지고 포기하려 할 때,

모든 희망은 깨어지고 꿈이 저 멀리 사라질 때,

당신 안에 있는 햇살을 찾아요.


불쾌한 날들, 휴식도 없고

억지웃음조차 지을 수 없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기억하세요. 당신 안에 있는 햇살을.


미국의 신예 시인 조조바 맨셀(Jojoba Mansell)의 시 ‘당신 안에 있는 햇살’이다. 쉽게 씌어진 동요 같은 시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 마음속에 있는 햇살. 무수한 행복들. 달콤한 햇살의 애무, 영혼의 향료, 하늘에서 쏟아지는 황금빛 사랑. 그 햇살 안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환희의 절정을 만끽한다. 하지만 어둠을 겪지 않고 밝음을 맞이할 수 없듯이, 햇살은 어둔 밤을 지내고 거친 비바람을 겪은 후에야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나는 것이다.


절망은 유한하지만 희망은 영원하다. 누군가 ‘희망은 꽃 없이 꿀을 만드는 벌과도 같다.’고 말했다. 너무도 잔인한 독설이다. 꽃이 없으면 벌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 없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듯 햇살 없이 어둠을 이길 수는 없다. 하늘의 햇살만큼 우리의 가슴에도 햇살이 있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 여유로운 삶의 태도, 미움을 버리고 사랑으로 채운 가슴. 그 내 안의 햇살이 불안과 고통, 두려움과 편견의 구름을 뚫고 비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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