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좁다’고 말한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고, 남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고, 하찮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에서도 ‘narrow mind’ 즉 마음이 좁다고 표현한다. 한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협량(狹量)’ 좁을 협에 헤아릴 양. 남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헤아릴 도량이 좁다는 얘기다. 좁은 문, 좁은 길, 좁은 방. 무릇 좁은 것은 답답하다. 자유롭지 못하다. 죽으면 자신의 몸에 맞는 작은 나무 상자 속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던 쇼팽도 산 채로 묻히는 것이 두려워 주치의에게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는 검시를 부탁했다지 않은가. 답답하고 숨 막히는 좁은 곳을 벗어나 넓고 자유로운 공간,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 우리들이다.
공간만이 아니다. 좁은 마음속에 갇히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아픈 일인가.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는 그 마음의 공간을 굳이 좁게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넓은 마음과 가는 허리를 가져야 한다는데 마음은 좁아지고 허리살만 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의 일이다. 한 모임의 만남을 위해 일자를 정하는 과정에서였다. 얼마 되지 않는 수의 모임인데도 좀처럼 날짜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내가 기한을 길게 잡아 다음 달의 첫 주 토요일을 제시했다. 10월에 서로 날짜를 못 맞추니 그다음 달 첫 주는 어떠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제안에는 일언반구 없이 갑자기 11월의 한 날을 잡아 만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내 생각에는 우선 내가 제시한 날짜에 맞지 않는 분이 있으니 한 주 더 늦추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무시당한 것 같은 마음도 들고 몇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것조차 이렇게 말이 많을 거면 굳이 모임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좁은 마음에 단톡방을 나와 버렸지만 곧 경솔하게 행동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결국 모임의 한 분이 내게 따로 문자를 보내 이해를 구했고 나는 단톡방에 다시 초대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하다. 그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발끈해서 모임과 결별하는 결정까지 내렸을까?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는 모임도 아니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 나누고 밥 한 끼 먹는 건데 날짜쯤이야 언제로 잡으면 무슨 상관인가. 내가 시간이 되는 날이면 누가 어떻게 결정을 내리던 그것이 기분 나쁠 일인가? 부끄럽기도 하고 나 자신을 향해 실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실수 하나로 모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좋았던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닐까? 나의 좁은 속 때문에 말이다. 단톡방에서 나의 무례한 행동에 황당했을 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작은 일에 집착하고 좋은 일에 흠집을 내는 나의 협량을 반성한다. 혹시 나 같은 실수를 저지른 분들이 있다면 프랑스 시인 쉴리 프리돔의 시 한 편 적어 보낸다. 부디 꽃병에 금 가지 않도록 살피시기를!
금간 꽃병
이 마편초 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가벼운 상처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먹어 들어
보이지는 않으나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맑은 물은 방울방울 새어 나오고
꽃들의 향기는 말라 들었다.
손대지 말라, 금이 갔으니.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마음을 스쳐 상처를 준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말라죽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작고도 깊은 상처에 혼자 흐느껴 운다.
금이 갔으니 손대지 말라.
마음 다치지 마시고 서운한 마음 푸시고 다만 제 속이 좁았음을 탓하세요. 곱게 다루어온 고운 꽃병에 금이 가게 한 것은 저의 잘못이니 굳이 손대지 마시고 다시 가득한 물에 꽃이 피어나게 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