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우울, 홀로 머무를 방
보들레르를 숭앙하여
프랑스 파리의 주택가는 미로 같았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 제 자리에 오곤 했다. 똑같은 건물, 비슷한 동상, 같은 모양의 카페들... 그 신기루들 속에 난 새벽에 떠났던 작은 모텔을 아침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파리의 아침 나는 잃어버린 집을 찾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리고 리옹의 기숙학교에서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눈물 흘렸을 어린 보들레르를 떠올렸다. 그 시절을 그는 이렇게 회상했었다. "탈속의 잔인한 시간에 대한 떨림, … 비참하고 버려진 어린 시절에 대한 불안, 강압적인 학교친구들에 대한 증오, 그리고 마음의 고독." 그날 아침 난 어린 보들레르가 되어 ‘파리의 우울’ 속에 빠져있었다.
‘파리의 우울’ 그것은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제목이었다. 타락과 방종으로 점철된 46년의 삶 속에서 그는 우울한 파리의 변두리, 쓸쓸하고 외로운 도시의 거리들을 자신만의 산문들로 그려냈다. 그는 자신의 글을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움직임과 상념의 물결침과 의식의 경련에 걸맞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면서 동시에 거친 시적 산문.”이라고 정의했다. ‘시적 산문?’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선정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운문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시킨 것이 ‘시’(詩)라는 장르이다. 압축된 의미와 운율, 그것이 시의 생명이었다. 보들레르가 스스로 명명한 ‘시적 산문.’ 하긴 산문도 운문만큼이나 시문학의 문체가 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까.
도시의 화려함 속에 숨은 우울함. 19세기의 파리만큼 오늘의 도시들도 번쩍이는 불빛들로 그 초라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 ‘도시의 우울’이랄까? 그는 수필 같은 자신의 시 속에서 변태적이고 망상과도 같은 인간의 삶을 묘사한다. 목 매달아 죽은 자식이 사용한 밧줄을 행운의 부적으로 가져간 어미의 황당한 모성(母性), 가난한 과부에게 남겨진 아이는 여인의 외로움을 달래는 애완동물에 불과하리라는 냉소, 구걸하는 거지를 두들겨 패고 그가 자신에게 덤벼드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남아있는 보잘것없는 의지와 도전의 정신을 보는 사이코 같은 환희. 고급 카페에 들어갈 수 없었던 가난한 세 식구가 창밖에서 카페를 들여다보는 동경의 시선을 참지 못하고 그곳에서 쫓아버리라고 소리치는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절망감... 어찌해서 도시의 우울은 그 오랜 세월을 보내고도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일까?
보들레르는 자신의 산문시집의 말미에 파스칼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대부분 자신의 방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데서 온다.” 하지만 도시 속의 나만의 방은 어디일까? 조용히 침잠하여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과연 존재할까? 가난과 비루함과 위선과 영혼의 궁색함은 비교의 대상이 사라지면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보들레르는 과연 자신의 방에 홀로 머무를 수 있었을까? 그가 사랑했다는---과연 그랬을까?--- 창녀 사라와 뒤발은 보들레르의 축복을 받은 가난한 영혼들이었던가?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그는 무엇에든 취하라고 권한다. 술이든, 책이든, 무엇에든! 그래서 그는 술에 취한다. 타락에 취하고 철학자의 오묘한 교언(巧言)에 취한다. 방탕함을 가리는 오만, 우울한 도시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각색한 방자함, ‘시적 산문’이라는 시보다 더 알 수 없는 허언(虛言). 위대한 허명(虛名)에 가려진 과대망상. 도시의 우울은 그렇게 온다. 나만의 방에 홀로 머물 수 없는 허기와 절박함에서 온다. 해답 없는 질문과 인간에 대한 비아냥거림으로는 좀처럼 해소되지 못할 우울함이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길을 잃었던 그날 아침 나는 좀 더 일찍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쉬이 길을 찾지 못한 것은 보들레르 때문이었을까? 나의 헛된 사색 때문이었을까? 파리의 새벽길은 평화로웠다. 개 짖는 소리 하나 없던 고요함. 미로와 같은 상념의 끝에 도착한 곳은 홀로 머무를 수 있는 조용한 쪽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