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Oct 16. 2024

긴 얘기를 짧게 쓰는 사람들

시’(詩)는 글쓰기의 호흡이 짧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시인은 길게 쓰지 못하는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 물론 소설가이자 시인인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시인이자 소설가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 제발 나의 무지를 용서치 마시기를. 시인은 예쁜 수필을 쓴다. 시적 산문이 그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노벨상 수상자로 정하면서 ‘시적 산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산문인데 시적이라는 얘기겠지. 사실 고대의 서사문학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모두 시였다. 드물게 산문이 끼어들긴 했어도 대부분 시의 운율을 지키고 있었다. 시인은 시를 쓰듯 수필을 쓴다. 하지만 소설이 시적이기는 어렵다. 줄거리가 대부분인데 문장 하나하나를 어찌 시적으로 쓰나. 아마도 몇몇 표현이 시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겠지.


오해하지 마시기를! 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수상을 누구 못지않게 반기는 사람이니까. 내 말은 일상적인 글에도 시적인 표현이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노벨상 위원회의 심사평도 시적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시의 핵심은 ‘압축’에 있다. 소설이 무수한 페이지들을 사용해 서술하는 감정이나 상황을 한두 줄의 시구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고 시의 압축적 기능이다. 그래서 시인은 위대한 예술가이지 재주 많은 글쟁이는 아닌 것이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그것이 시의 작법에 맞던 틀리던 시심(詩心)이 발동하면 마음속 이야기를 시처럼 풀어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한다. 일기처럼, 짧은 수필처럼, 자신을 위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시의 형식을 빌려 글을 쓴다. 등단한 기성 시인의 눈에 서툴러 보일지 몰라도, 어떤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오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삶이 시처럼 압축적이고 은유적이고 저절로 흘러나오는 솔직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시 같은 세상이 펼쳐질 테니.


서툰 시의 첫 번째 문제는 압축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시 비슷한 것을 써보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저러한 표현들이 그저 산문 같다. 모든 걸 설명하려면 굳이 시의 형식을 빌릴 이유가 없다. 길게 쓰면 된다. 누구나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오래 설명하는 것이 낫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압축적인 한 마디로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시어(詩語), 그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시인일 수 없는 이유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압축을 시도하려고 나도 너도 누구도 모를 낱말을 굳이 사용하는 오류이다. 그저 평범하고 이웃 같은 낱말로 쓰면 될 것을 괜한 어휘를 나열함으로써 자신의 감정 표현을 훼손한다. 나처럼 문학을 오래 가르친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이다. 형식주의 비평이 말하는 꼼꼼히 읽기는 시어 하나하나의 의미와 상징과 은유 그리고 그것이 다른 시어와 연결되는 논리적이고 예술적인 관계 등을 구명하려 한다. 그래서 몇 편의 짧은 시들을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낸다.  이런 이유로 많은 시들이 직관이 아닌 계산으로 만들어진다. 감히 말하건 데 형식주의 비평의 폐단이다.


마지막으로는 압축적이고 시적인 표현이 불가능할 때 오는 지적 허영이다. 시는, 쓸 때는 시인 자신과 하나님만 그 뜻을 알다가 쓰고 나면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던가! 농담 같은 말이지만 생각해 볼 일이다. ‘자네 논문은 시 같아.’ 예전 교수님이 내게 했던 말이다. 해석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왜 애꿎은 시를 들먹이고 시인을 조롱하느냐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논문은 압축적이어서는 안 되니까. 충분히 설명해야 하니까. 설득력이 있어야 하니까. 짧지만 진실한 시도 그래야 한다. 설득력 있고 공감을 자아내야 한다. 분위기가 아닌 알맹이로 말이다.  


이제 앞서했던 나의 경솔한 표현을 정정한다. 시인은 길게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짧아도 길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시인은 대단하다고. 대단한 시인은 그래서 많지 않은 것일 테지. 그래도 시를 쓰자. 서툰 것을 깨닫고 고쳐가며 끊임없이 쓰자. 시인들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쓰고, 나 같은 사람들도 마음속 시심을 서툰 글에 담아보자.  

작가의 이전글 도시의 우울, 홀로 머무를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