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
Édouard Manet, Le Dejeuner sur l’Herbe, 1863
마네의 이 유명한 그림은 1863년 파리의 살롱 전(展)에는 선택되지 못했지만 탈락 작품들 가운데 문제작들을 전시하는 ‘거부된 것들의 살롱’(Salon des Refusés)에는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이 작품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정장 차림의 남자들과 함께 앉은 나체 여인의 당당한 모습은 예술계와 대중들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또한 마네는 당대의 그림들과는 달리 빛과 어둠 사이의 대비를 더욱 두드러지게 묘사하였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전통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마르셀 뒤샹 : 샘(1917)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20세기 가장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마르셀 뒤샹의 ‘샘’은 전형적인 ‘레디메이드 아트’(ready-made art)였다. ‘레디메이드’는 작가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변화된 일상의 물체를 의미한다. 1917년 그는 뉴욕에서 결성된 ‘독립 예술가 협회’(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에 실제의 변기(便器)를 작품으로 출품하였다. 협회는 ‘샘’이라는 제목의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어떤 것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을 평가하고 자격을 부여하는 예술단체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20세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방향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파블로 피카소 : 게르니카(1937)
Pablo Picasso, Guernica, 1937
피카소의 거대한 벽화 게르니카는 1937년 바스크 지역 한 마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을 묘사한 것이었다. 이후 이 작품은 폭격을 당한 모든 도시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파시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예술적 비난이었고, 그 강렬하고 신랄한 메시지로 오랜 세월 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어왔다. 피카소는 스페인에 정의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작품을 전시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196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을 때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작품을 철거해 줄 것을 청원하기도 하였다. 2003년에는 유엔 본부 건물 벽에 태피스트리 형태의 게르니카가 걸렸다.
잭슨 폴록 : 푸른 막대기들(1952)
Jackson Pollock, Blue Poles or Number 11, 1952
잭슨 폴록은 가장 영향력 있는 표현주의 미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바닥에 놓인 거대한 캔버스 위에 물감을 튀기거나 흩뿌려 작품을 만드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성에 대한 환멸에 빠졌던 그는 현대의 인간 상황이 드러내는 부조리를 거칠게 묘사했다. 그의 대표작은 ‘넘버 11’으로도 알려진 ‘푸른 막대기들’이다. 폴록의 파격적인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곧 대중문화에 의해 수용되었고 현대 예술의 전조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폴록 자신은 자기 작품의 방향과 수용에 비판적이었다.
앤디 워홀 : 캠벨 수프 캔(1962)
Andy Warhol, Campbell’s Soup Cans, 1962
팝 아트 운동의 선구자였던 앤디 워홀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고 논쟁적인 미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은 예술적 표현, 셀럽 문화, 대량 생산, 매스 미디어 문화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크스크린 페인팅 ‘캠벨의 수프 캔’은 로스앤젤레스 전시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무시하고 심지어 경멸감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한 때 워홀은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그저 ‘캠벨의 수프’를 계속했어야만 했다... 모든 이들이 어쨌든 한 가지 그림만을 만들고 있으니까.”
안드레스 세라노 : 피스 크라이스트(1987)
Andres Serrano, Piss Christ, 1987
‘피스 크라이스트’는 미국의 사진작가 안드레스 세라노의 사진 작품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소변이 담긴 유리통에 잠겨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像)’을 찍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엄청난 반향과 함께 미국 상원의원들의 분노를 촉발하였는데 세라노는 미국 국립 예술기금 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사진을 신성모독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세라노는 여러 차례 살해 협박을 받았고, 2011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사진이 훼손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게릴라 걸즈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려면 여성들은 나체이어야만 하는가?(1989)
Guerilla Girls,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 1989
게릴라 걸즈는 페미니즘 여성 미술가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사실과 유머, 괴이한 그림이나 영상 등을 사용해 정치, 예술, 영화, 대중문화 등에 드러나는 젠더 문제, 윤리적 편견과 부패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1989년 그들은 뉴욕의 비영리 예술단체 ‘공공 예술기금’(Public Art Fund)에 포스터 하나를 제출한다. 그것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무시하고 여성을 사물화(事物化)하는 미술관들의 풍토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PAF는 그것이 너무 ‘도발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였지만 게릴라 걸즈는 뉴욕시의 버스 광고판을 이용해 직접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작품을 알렸다.
아이 웨이웨이 : 한(漢) 왕조 도자기 떨어뜨리기(1995)
Ai Weiwei, Dropping a Han Dynasty Urn, 1995
중국 출신 건축가이기도 한 아이 웨이웨이는 현대의 가장 두드러지는 선동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중국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표현이었다. ‘한 왕조 도자기 떨어뜨리기’는 작가 자신이 상징성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200년 된 도자기를 깨부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일종의 문화재 파손으로 여기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하였다. “마오쩌뚱 장군은 낡은 세상을 파괴해야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트레이시 에민 : 내 침대(1998)
Tracy Emin, My Bed, 1998
‘내 침대’는 일종의 설치 미술로 트레이시 에민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들 중 하나로 만든 작품이다. ‘내 침대’가 1999년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미술관에 처음 전시되었을 때 그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라졌었다. 어떤 이들은 극심한 경멸감으로 비판을 가했으며 다른 이들은 그것에 매료되었다. 어찌 되었던 이 고백적인 작품은 사람들의 가장 은밀한 공간, 실패, 우울, 여성적 결함, 체액(體液) 등 금기(禁忌)의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데이미언 허스트 : 신(神)의 사랑을 위하여(2007)
Damien Hirst, For the Love of God, 2007
데이미언 허스트는 오늘날 가장 논쟁의 중심에 있는 예술가들 중 하나이다. 죽은 동물들을 방부제에 넣어 보관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 당 무려 50,000 파운드에 팔리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이 시대에 가장 고가로 팔리고 있지만 또한 가장 큰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플래티넘 주물로 만들어진 인간의 두개골인데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이 작품은 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가장 고가인 5,000만 파운드에 팔리기도 했는데 작품의 제작비용은 1,400만 파운드였다고 한다. 이는 당연히 예술과 금전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가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방식에 대해 많은 이들이 경멸감과 함께 영감을 얻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편이든 그는 현대의 예술계에 확실한 자취를 남긴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