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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女人)

by 최용훈

여인(女人)


햇살이 이리 따뜻한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어둠이 온기를 몰고 가버린 뒤에.


그대의 더운 가슴이 부드러운 손길이

이다지 그리울지 몰랐습니다.

그대 내 곁을 떠난 뒤에.


지나치는 바람에 머릿결 넘기던

그대의 흰 손, 고운 손톱,

정갈한 이마와 붉은 입술,

귀 아래 검은 점까지

여전히 내 가슴속 깊이 남아있음을

정녕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 성숙(成熟)의 여인이여

그대 옷자락 날릴 때면

나는 은밀한 향기에 취했지요.

그대의 걸음은 날리는 꽃잎 같았고

그대의 음성은 새들의 속삭임처럼

감미로웠습니다.

그대의 미소는 내 온갖 상념을

그렇듯 뒤흔들어 놓았지요.

아 미지(未知)의 여인이여

한 번의 숨결로 내 지친 열정을 깨우고

한 번의 손짓으로 내 모든 욕망을 흔들던

그대 나의 정념(情念), 나의 미혹(迷惑),

영원의 기다림...


꿈길에서 그대를 만났습니다.

긴 머리카락 날리며

그대는 멀리서 웃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그대의 온기를, 향기를, 더운 가슴을

쓸어안고 싶었습니다.

갈바람이 포도(鋪道) 위 낙엽을 날리면

또다시 꿈에서 깨어

그대를 그리워할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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