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면
잊기로 했소
흙길 위에 고인
황토물까지 다 씻겨지길
기다리기로 했소
여전히 태양빛이 머물고
추레한 낙엽이
적막한 길을 어지럽혀도
비는 끝내
그칠 줄을 모르는구려
아마 내리는 비가 날
알아버린 모양이오
말라버린 마음을 적시기엔
아직 부족한 것을
오늘밤에도 별이 가득하오
몇몇은 깜박이며 날
희롱하는 것 같소
기억하오? 총총한 별 아래
우리 입 맞추던 그날의 설렘을
이젠 그 별빛도
꺼져버린 마음을 다시
밝힐 수는 없겠지
텅 빈 의식을 다시
채울 수는 없겠지
모두가 시간의 탓이오
헤아리지 못한
영혼의 궁핍함
천박한 망각 때문이오
달빛은 여전하구려
하지만 비 온 후의 바다에는
달빛도 잠기기가
망설여지는 모양이오
모래사장에 남겨진
작은 의자 하나가
나의 철 지난 그리움 같소
그 뜨거웠던 절정 속에
모두 타버린 잿빛 열정
이제 일어서야겠소
취한 만큼 외로움도 깊어지겠지
스쳐가는 가을에는
비가 그치면
잊기로 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