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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02. 2024

비가 그치면 잊기로 했소


비가 그치면

잊기로 했소

흙길 위에 고인

황토물까지 다 씻겨지길

기다리기로 했소

여전히 태양빛이 머물고

추레한 낙엽이

적막한 길을 어지럽혀도

비는 끝내

그칠 줄을 모르는구려

아마 내리는 비가 날

알아버린 모양이오

말라버린 마음을 적시기엔

아직 부족한 것을


오늘밤에도 별이 가득하오

몇몇은 깜박이며 날

희롱하는 것 같소

기억하오? 총총한 별 아래

우리 입 맞추던 그날의 설렘을

이젠 그 별빛도

꺼져버린 마음을 다시

밝힐 수는 없겠지

텅 빈 의식을 다시

채울 수는 없겠지

모두가 시간의 탓이오

헤아리지 못한

영혼의 궁핍함

천박한 망각 때문이오


달빛은 여전하구려

하지만 비 온 후의 바다에는

달빛도 잠기기가

망설여지는 모양이오

모래사장에 남겨진

작은 의자 하나가

나의 철 지난 그리움 같소

그 뜨거웠던 절정 속에

모두 타버린 잿빛 열정

이제 일어서야겠소

취한 만큼 외로움도 깊어지겠지

스쳐가는 가을에는


비가 그치면

잊기로 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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