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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외투

by 최용훈

아버지의 외투에서는

군고구마 냄새가 났다.

이불속에 묻어둔 흰밥 한 숟갈에

고등어 한 조각 얹어 내밀며

어린 아들의 기다림을

미소로 품어주었지.


이른 아침의 라디오 소리

김치찌개 냄새

부스스 눈 뜬 아들은

오늘도 아버지의 구두를

닦지 못했다.

겨울의 푸른 새벽

미몽(迷夢) 간에 들리던 그 소리

그 내음이

불안한 젊음의 위로였음을

세월이 남긴 그리움이었음을.


아들의 일탈에

분노 대신 절망했던 아버지,

오십을 간신히 넘기고

세상을 버리니

아내와 세 남매 남기고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칠성판 위의 아버지,

스물넷 아들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사십여 년 세월을 격(隔)해

아버지의 관을 여니

아직도 미련 남아

베옷에 얽힌 백골(白骨),

항아리에 담겨

하룻밤 아들 집에 머무니

아들은 죄스러워 고개 떨군다.


생전에 못들은 말

꿈에선들 들을까,

기다림만큼 길어진

아버지의 무언(無言).

그날도 그랬지 그렇게 말없이 떠나셨지.

낡은 신분증, 색 바랜 사진 몇 장

소원처럼 남기고

젊은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다.


군고구마 담겼던 외투만이

흐린 기억 속에 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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