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배경(1840~1890), 테니슨과 브라우닝 부부
빅토리아 시대는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급속한 산업의 발달과 세계 곳곳에 산재하던 식민지들을 이용한 무역의 확대 등 빅토리아 시대는 경제적 역동성과 급격한 산업화의 시대였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주창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영향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amount of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of people)이라는 슬로건 아래 개인적,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중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이 시대의 주요한 사상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통한 엄격한 청교도적 윤리와 신앙이 강조됨으로써 이 시대는 과거와 현재가 역설적으로 공존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빅토리아 시대는 체면과 명분을 중요시하고, 도덕을 높은 가치로 내세우면서도 내면으로는 타락과 방종, 이기심이 널리 퍼진 ‘위선의 시대’라 불리기도 한다.
이 시대의 초기에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으로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이라는 노동 운동이 발생하는 등, 초기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기도 하였다. 이후 경제 상황의 개선을 통해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고 사회적으로도 다소 안정을 회복하였지만, 이념적인 혼란과 논쟁이 첨예하게 대두된다. 이 시기의 끝에는 이른바 세기말적 현상(fin de siecle)이 드러나 퇴폐와 허무주의의 분위기가 만연되기도 하였다.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 시인으로는, 워즈워드 이래 영국의 계관시인이 된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고전시대 및 중세로의 회귀를 추구하였다. 신과 종교에 대한 당대의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신이 창조한 우주의 질서와 사랑의 정신을 전파코자 하였던 것이다. 친구의 죽음을 애도한 ‘A.H.H를 그리며’(In Memoriam A.H.H.)라는 시에 등장하는 다음의 구절은 많이 인용되는 그의 대표적 시구이다.
나는 그것이 진실이라 생각하네, 하늘이 무너져도;
나는 그것을 느끼네, 가장 슬플 때에도;
전혀 사랑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사랑을 하고 상실을 겪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27)
테니슨은 이 외에도 ‘깨져라, 깨져라, 깨져라’(Break, break, break)라는 시와 ‘눈물, 천천히 흐르는 눈물' (Tears, Idle Tears)과 같은 시를 쓰기도 하였다. ‘눈물,...’에서는 신과 그가 창조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 속에 흐르는 눈물을 표현한다. 슬픔과 연민이 아닌 감동과 깊은 종교적 경건함에서 흐르는 눈물, 그것은 우주 속의 작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의 원초적인 외로움과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눈물, 천천히 흐르는 눈물, 나는 그것의 의미를 모른다.
저 깊은 신성한 절망 속에서 눈물이
가슴에 솟아올라, 누가에 모인다.
행복한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지나간 날들을 생각할 때면.
벗들을 저 지하의 세계로부터 데리고 오는
돛단배 위에 반짝이는 최초의 빛처럼 새롭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저 수평선 아래로 잠기는
그 배를 붉게 물들이는 마지막 빛처럼 슬픈;
그러듯 새롭고, 그렇듯 슬픈 지나간 날들. (28)
테니슨과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은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과 그의 아내 배릿 브라우닝(Barrett Browning)이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대표적인 시 ‘나의 전처 공작부인’(My Last Dutchess)은 ‘극적 독백’(dramatic monologue)이라는 기법으로 유명한 시이다. 중매를 위해 공작을 찾아온 손님에게 시 속의 화자, 즉 공작은 자신의 전처 초상화 앞에서 그녀를 회상한다. 작품 속에서는 그녀가 마치 부정한 여인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결혼 지참금을 노리고 백작의 딸과 결혼했던 공작의 탐욕, 그리고 아내를 학대하고 의심한 위선자 공작의 모습이 마치 희곡의 대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브라우닝은 이 시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인 도덕과 결혼 풍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의 아내 배릿 브라우닝은 당시 남편보다 더 높은 명성을 누리던 시인이었다. 테니슨과 계관시인 자리를 두고 겨뤘을 만큼 뛰어난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사고로 척추를 다쳐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외롭고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 날 여섯 살 연하의 로버트 브라우닝이 편지를 보내온다.
"배릿 양, 당신의 시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합니다.
당신의 시는 내 속으로 들어와 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온 마음 다해 그 시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당신도 사랑합니다."
대담한 사랑의 고백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수많은 편지를 교환했고, 로버트 브라우닝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끈질기게 구혼을 한다. 배릿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그의 청혼을 번번이 거절했지만 마침내 브라우닝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녀의 부친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고, 건강이 악화된 배릿을 위해 이태리로 떠난다. 브라우닝 부부는 아들을 하나 두고 15년 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남편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난다. 두 시인의 이야기는 영문학사에 남겨진 유명한 러브 스토리였다. 그리고 배릿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름답고, 헌신적인 사랑의 시를 남긴다. 모든 부부에게 보내는 사랑의 헌시이다.
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할까요? 말씀드리죠.
감정이 시야에서 벗어나 생의 목적과 은총의 극치를 찾을 때
내 영혼이 도달할 수 있는 그 깊이와 그 넓이와 그 높이까지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
나의 놓쳐버린 성자들과 함께
잃어버린 것으로 보였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내 모든 삶의 숨결. 미소. 눈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신이 허락하신다면 죽은 후에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29)
그녀를 사랑했고, 절절한 그녀의 사랑을 받아서일까? 로버트 브라우닝은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담하고 낙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봄날 아침 일찍 눈을 떠 눈부시게 빛나는 진주 같은 이슬을 바라보는 누구에겐들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을까. 사랑했던 그의 병든 아내 배릿, 그녀와 함께 한 이태리에서의 삶도 브라우닝에게는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세상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의 짧은 시 ‘피파의 노래’(Pipa's Song)에서처럼 종달새가 지저귀고, 움직인 듯 만 듯 소리 없이 앞을 향해 움직이는 달팽이의 여유로움이 부러운 오늘이다.
일 년 중 봄
봄날 아침
아침 일곱 시
언덕 중턱엔 이슬방울 진주되어 맺히고
종달새는 높이 날고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를 기어간다
하느님 하늘에 계시니
온 세상이 좋구나. (30)
한편 이 시대 또 다른 시인 매튜 아널드(Matthew Arnold, 1822~1888)는 시집 ‘도버 해변’(Dover Beach)을 출간한다. 그러나 문학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교양과 무질서’(Culture and Anarchy)라는 사회비평서였다. 이 책에서 그는 편협하고 속물적인 중산층 계급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비판하고, 인문학적 교양(culture)과 지성을 통한 대중의 계도와 중산층의 교육을 주장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문학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English Texts:
From In Memoriam, A.H.H.
by Alfred Tennyson
I hold it true, whate'er befall;
I feel it when I sorrow most;'
T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Than never to have loved at all. (27)
From Tears, Idle Tears
by Alfred Tennyson
Tears, idle tears, I know not what they mean,
Tears from the depth of some divine despair
Rise in the heart, and gather to the eyes,
In looking on the happy Autumn-fields,
And thinking of the days that are no more.
Fresh as the first beam glittering on a sail,
That brings our friends up from the underworld,
Sad as the last which reddens over one
That sinks with all we love below the verge;
So sad, so fresh, the days that are no more. (28)
From a sonnet
by Barrett Browning
How do I love thee? Let me count the ways.
I love thee to the depth and breadth and height
My soul can reach, when feeling out of sight
For the ends of being and ideal grace.
............................
I love thee with a love I seemed to lose
With my lost saints. I love thee with the breath,
Smiles, tears, of all my life; and, if God choose,
I shall but love thee better after death. (29)
Pipa's Song
by Robert Browning
The year's at the spring,
And day's at the morn;
Morning's at seven;
The hill-side's dew-pearled;
The lark's on the wing;
The snail's on the thorn;
God's in His heaven--
All's right with the world.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