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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시대

유미주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by 최용훈

빅토리아 시대는 ‘소설의 시대’라고 불린다. 이는 19세기 유럽의 모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양의 역사에 있어 19세기는 사람들의 생활과 그들의 생각에 엄청난 변혁을 초래한 세기였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을 통한 소비생활의 변화,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진 까닭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소작농들이 도시로 이전해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자본가들은 강력한 자본의 힘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하였고 이로 인해 도시 빈민층이 생겨난다. 마르크스주의(Marxism)와 공산당 선언 등으로 20세기 초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양극체제(bi-polar system)가 대두되었으며 이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발전하였다. 과학에 있어서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은 기독교적 창조론에 대항하였고 독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변혁의 시대에 실증주의(positivism) 철학은 ‘오관에 의해 인지되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였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사실주의(Realism)의 태동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사실주의에 가장 적합한 문학적 장르는 소설이었고, 출판 기술의 발달로 인한 교육의 확산, 중산층 및 노동자 계급 등 독자층의 확대 등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체로 풀어내는 소설이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19세기의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들과 그들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소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
조지 엘리오트(George Eliot, 1819-1880) : 미들 마치(Middle March)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1816-1855) : 제인 에어(Jane Eyre)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 :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 : 무명의 쥬드(Jude the Obscure)
테스(Tess of the D'Ubervilles)


유미주의 (Aestheticism)


유미주의(唯美主義)는 탐미주의(耽美主義)라고도 불리며 예술은 도덕적, 실용적인 측면의 기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널리 퍼진 유미주의는 예술은 오로지 아름다움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강조한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예술의 자율성과 관련하여 ‘판단력 비판’이라는 저서에서 예술을,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자유로운 예술’과 다른 목적을 지니는 수단으로써의 ‘임금 예술’을 구분함으로써 유미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한편 19세기 프랑스의 시인 고티에(T. Gautier)는 예술 작품의 목적은 오직 그 형식적 완벽성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자체의 존재를 넘어선 어떤 목적도 없기 때문에 예술은 인류의 문화적 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미주의는 아름다움 자체를 숭배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과 예술가를 분리시켰다. 그럼으로써 예술가의 고립을 초래한다. 유미주의 성향을 지닌 문학은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한 일반 대중에게는 지극히 난해한 것이었다. 이는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내용보다는 형식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로는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페이터(W. H. Pater),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작가들, 미국의 포우(E. A. Poe), 프랑스의 보들레르(Baudelaire) 등이 있다.

사실주의(Realism)와 자연주의(Naturalism)


사실주의는 흔히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실제의 세상을 충실히 묘사하고, 주변의 사회에 관해 기술하며, 가능한 한 객관적이 되도록 노력한다.” (A truthful depiction of the real world through direct observation, writing about the society around him, striving to be as objective as possible) 사실주의는 역사적 주제나 이상화된 인간의 동기나 행위를 다루지 않고, 당대의 삶을 세세히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주의는 현실의 추하고 어두운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싸구려 술집과 하수구’(tavern and sewer) 문학으로 비하되기도 했고 비도덕적이며 방탕한 것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사실주의 문학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광부, 공장 노동자, 창녀, 범죄자 등과 같은 하층계급의 삶을 그려내고 있고, 과거와는 달리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새로운 여성상을 창조하였으며, ‘지금, 여기’를 강조하여 사회적, 경제적 갈등, 성과 인간관계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연주의(Naturalism)는 종종 ‘비관적 사실주의’(pessimistic realism)라고 불린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에밀 졸라(Émile Zola)를 중심으로 일어난 자연주의 운동은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사실주의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사실주의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자연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과학적 방법론, 특히 유전적, 환경적 영향에 주목하고 상황을 더욱 객관적으로 분석, 관찰, 실험, 검토하려 하였다. 마치 사실주의가 대상을 눈으로 보는 것이라면 자연주의는 그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려 하였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대상의 더 추하고, 더러운 측면을 보다 세밀히 묘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주의는 '극단적 사실주의'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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