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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때문에

by 최용훈

호모스크립투스, 글 쓰는 사람. 내 유튜브 채널명이다.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브런치에 그 이름을 쓸걸. 어떤 친구가 묻는다.

“그게 무슨 뜻이야?”

“글 쓰는 사람”

“유튜브에 무슨 글을 써?”

“그러게 왜 갑자기 그게 생각난 거지?”


2년쯤 전에 심심파적으로 시작한 유튜브는 내게 글쓰기와 같았던 모양이다. 아니 그저 그 이름이 괜찮아 보였는지 모른다. 브런치에 시원찮은 글을 올리면서 나 스스로를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싶었는지도. 또 다른 친구가 안쓰럽다는 듯이 말한다.

“다른 사람한테 알려 주려 해도 이름이 기억이 안 나.”

“흐흐흐”


이름이야 무엇이든 무슨 상관인가?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면 그만인 게 이름이다. 장미는 무엇이라 불려도 장미다. 그 향기와 빛깔이 어디 가겠는가? 줄리엣이 그랬지. “로미오, 차라리 이름을 바꾸세요.” 이름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을 바꾸면 된다는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해결책.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남기지 못해 안달이다. 그것이 정말 그렇듯 중요한 일일까? 수백 년 수천 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을 갖는 것이 그토록 영광스러운 일일까? 혹시 작은 이름이나마 남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쏘 왓?“


사람은 자신의 이름 때문에 갈등하는 존재이다. 자신의 본모습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싶어서 글을 쓰고, 그 이름을 알리려 공부하고, 출세하고... 그 온갖 고역이 다 이름 때문이다. 제 이름으로 스스로의 우주를 창조한다고 믿기 때문일까? 그래서 변기통을 세워놓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으면 예술작품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난센스다.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이름을 남기는 것은 세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다. 먼지로 태어났으니 그저 먼지로 돌아가는 법. 이름 따위가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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