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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11. 2020

모더니즘 시인들

이미지즘, 명징성, 단순성

  현대시는 영국의 T. E. 흄(T. E. Hume)과 미국의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에 의해 주도된 이미지즘(Imagism) 시로부터 출발한다. 이미지즘 시인들은 감정에 대한 과도하고 주관적인 표현을 피하고 시적 명징성과 단순성을 추구한다. 한 편의 시가 그려내는 선명하고 단순한 이미지, 그것이 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다음은 에즈라 파운드의 ‘지하철역에서’(In a Station of Metro)라는 시이다.

       

군중 속의 유령 같은 이 얼굴들
젖은 검은 가지 위의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지하철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군중들. 삶의 무게를 지고 곳곳으로 흩어지는 그들.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가면을 쓴 것 같은 그들의 얼굴은 마치 유령 같다. 비에 젖어 검게 변색된 거친 나뭇가지 위에 달라붙은 작은 꽃잎들. 작은 바람에도 떨어질 듯 간신히 붙어있는 그 꽃잎 같은 사람들. 14개의 단어로 그려진 지하철의 이미지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선명하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영국의 시인들로는 하디(Thomas Hardy), 하우스만(A. E. Housman), 예이츠(W. B. Yeats), 엘리엇(T. S. Eliot), 오든(W. H. Auden), 딜런 토마스(Dylan Thomas) 등이 있다. 다음은 인간의 불안, 공포, 좌절, 비관 등을 그려냈던 하디의 ‘무채색’(Neutral Tone)이라는 시의 첫 연이다.

       

우리는 그 겨울 연못가에 섰다
태양은 신의 꾸중이라도 들은 듯 창백했다
굶주린 땅 위에 몇 개의 나뭇잎이 누워있었다
그것들은 풀뿌리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었고, 잿빛이었다. (31)           
       

  이 시에 나오는 겨울 연못가, 신의 꾸중, 굶주린 땅, 잿빛 나뭇잎 등의 표현은 삭막한 인간의 삶과 그 현장의 황량한 이미지를 표출한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연못가에 선 우리, 햇볕조차 온기를 잃고, 차디찬 땅 위에 초라하게 들러붙은 잿빛의 나뭇잎들은 갈 길을 잃은 인간의 외롭고 쓸쓸한 방황을 떠올리게 한다.
                           
  A. E. 하우스만은 금욕주의를 강조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 ‘내 나이 스물한 살 때’ (When I Was One-and-Twenty)에서 그는 젊은 시절의 소중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나이 스물한 살 때
한 현자가 내가 말했지
“돈은 주어버려도
마음은 주지 말라;
진주와 루비는 던져버려도
마음은 자유롭게 하라.”
하지만 내 나이 스물한 살 때
그 말은 아무 소용없었지.

내 나이 스물한 살 때
그가 다시 말했어,
“가슴속 그 마음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수많은 한숨으로 값을 치렀고
끝없는 후회로 얻은 것이다.”
내 나이 스물둘,
오, 그 말은 진실이었어, 진실이었어. (32)

    

  아일랜드 출신의 예이츠는 비극적 인간 상황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고, 꿈과 현실,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 사이의 갈등을 그려낸 시인이었다. 한편 T. S. 엘리엇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일 뿐 아니라 신비평이라 불리는 형식주의 비평의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는 낭만주의 시들이 감성과 이성을 분리시켰다고 말하며 그것을 ‘감수성의 분열’이라 불렀다. 그는 시인은 주관적 감성에만 지나치게 몰입해서는 안 되며 감성과 이성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탈 개성화하여 시의 표현에 있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시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란 개념에서 구체화된다. 이 용어는 시인이 생각한 특별한 감정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대상, 상황, 사건들을 가리킨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이별의 슬픔을 떠올릴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은 무엇일까? 사랑의 열정을 표현할 구체적인 대상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구절,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에서 화자는 밤새워 우는 벌레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의 울음을 부끄러운 이름과 대비시킨다. 시인에게 있어 벌레는 사랑하는 조국을 잃고 타지를 배회하는 자기 자신 일 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넘어 독자들에게도 그러한 감성을 이입시키는 객관적 대상으로 벌레를 선택한다. 그리고 이름을 잃고, 조국을 잃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벌레라는 대상을 통해 객관화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첫 연을 소개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언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나약한 뿌리를 봄비로 뒤흔드는.
겨울이 따뜻했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미물을 먹였던.  (33)


  왜 시인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의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많은 비평가들은 이 구절을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풍요로워진 현대이지만 20세기의 문명은 그 풍요 속에서 과거의 따뜻한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는 자신이 비판했던 낭만주의가 그리워했던 과거를 동경한다. 하찮은 생명체에게도 작은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과거, 그래서 그는 “겨울이 따뜻했다.”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명 비판적 시각은 W. H. 오든의 시에서도 드러난다.


변화되느니 차라리 몰락하리라
시대의 십자가에 올라
우리의 환상을 죽게 하느니
차라리 두려움 속에 죽으리라  (34)


  시인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퓰리처상 수상작인 그의 ‘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라는 긴 시에서 오든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시대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차라리 두려움 속에서 죽을 것이라 말한다. 시인은 오늘의 시대를 ‘불안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그렇게 시인은 그 시대의 감정을 포착해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 그것이 시인이고 그것이 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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