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거미줄
AI도 불안감을 느낀데
전쟁, 폭력, 질병 같은 말을 들으면.
명상처럼 마음을 어루만지는 프로그램이 입력되면
불안감의 정도가 낮아진다더군, 사람처럼.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얘기는 그의 것이 아니야.
언어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하는 것이라지.
하지만 낱말 몇 개 바꾸어 제 글이라 고집하고,
높낮이 조금 바꾸어 새 노래를 만드는 건
AI 같은 가짜 인간들의 안간힘이야.
세상의 모든 지식 다 얻으려 영혼을 파는
수많은 파우스트들이 거리에 넘쳐나.
남의 것을 제 것으로 만들려는 말라버린 영혼들.
소변기에 이름을 쓰면 예술이 된다던데
자기 것 없이 사는 세상에선 우기면 이기는 건가?
고뇌 없는 창조는 실체 없는 그림자일 뿐이야.
슬픔이나 그리움 없는 사랑 같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더군.
거짓을 베끼는 동안은 내뱉은 모든 말을 잊어선 안 되지.
기억해. 고된 기억의 거미줄에서 벗어나려면
눈과 귀와 입 대신 마음을 키워야 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