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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도

by 최용훈

나 같은 사람도 시를 쓴다

하늘에 나무에 바람에 무감한,

계산 많은 내가 시를 쓴다

한 순간도 감동하지 못하고

주어 동사 틀리면 역겨워하는

융통성 없는 내가 시를 쓴다


나 같은 사람이 시를 읽는다

어려운 단어, 추상적인 표현에 질색하는,

인색한 내가 시를 읽는다

시집 한 번 사본 적이 없고

모든 글에 밑줄 그어 따지는

메마르고 천박한 내가 시를 읽는다


나 같은 사람이 시를 평한다

이해할 수 없으면 시답지 못하다 하는,

편협한 내가 시를 평한다

시론이던 평론이던 깡그리 무시하고

순간의 인상에 기대어 미소 짓는

무지하고 독선적인 내가 시를 평한다


불쌍한 시, 죄 없어 안쓰러운 시인,

범람하는 문학의 흙탕물에

건조한 내 영혼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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