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나목(裸木)들이
초록의 옷을 입었다.
눈부신 햇빛 아래 더욱 짙어진
나뭇잎의 빛깔들이 눈부시게 흩어진다.
청계산 카페 유리창 밖으로
영산홍과 철쭉의 붉은빛이 더해지니
갑자기 바뀐 계절의 색채가 황홀하다.
흰 벚꽃들이 봄비에 흩어진 그날에는
아직 초록을 느끼지 못했었나 보다.
망연히 내려다보는 작은 개울에
얕은 물이 흐르고
새소리 하나 없는 풀 돋아난 마당에
겁 없는 비둘기 두 마리
발아래서 걷다가 불연 듯 날아오른다.
아 이제 봄인가 했더니 어느새 여름인가.
햇살이 따가워 그늘 아래로 숨어드는
초로(初老)의 옹졸함이 부끄럽지는 않다.
계절이 몇 번 바뀌어야 알 수 있을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들을.
이제 다시 울긋불긋 단풍이 지고
흰 눈이 세상을 덮으면
또다시 기다릴 봄은 초록의 옷을
한 번 더 갈아입겠지.
흐르는 세월만큼 덧없는 것이 있을까?
새삼 옷장 속에 걸어놓은
추레한 옷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창 너머로 보이는 회색의 바위는
계절이 바뀌어도 그대로인데
젊은 마음은 왜 이다지 헤매어 떠도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