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

by 최용훈

매일 아침 통장에 천만 원이 입금된다. 신나는 일이다. 문제는 그 돈의 유효 기간이 그날 밤 까지라는 것이다. 자정이 지나면 어김없이 계좌에서 사라진다. 그러기 전에 그 돈을 다 써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물론 전액 인출은 불가능하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액수만을 써야 한다. 돈은 아니지만 매일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있다. 시간. 그런데 그 시간도 하루가 지나면 사라진다. 저축도 되지 않고 시간을 어디서 꾸어 쓸 수도 없다. 내가 사용하는 그 시간만이 전부라는 얘기다.


요즘의 내 하루 일과가 입금된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바보의 하루 같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어선지 아까운 줄 모르고 흘려보낸다. 하루에 꼬박 24시간씩 입금되고 하루가 지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시간의 통장은 텅 빈다. 내일이 있지 않은가 희망을 가져보지만 그래도 허투루 써버린 시간이 안타깝다. 결국 주어진 돈도 시간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은 패배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들의 삶에 어떠한 순간이 남게 될까? 결국은 내가 갖게 된 것을 어찌 쓸 것인가에 삶의 성패가 달린 것은 아닐까?


2,500년 전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인간의 행복을 이야기하면서였다. 그는 행복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원한다’라는 사실이다. 왜냐면 그것은 모든 행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행복은 외부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돈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무지한 사람은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낭비를 일삼아 결국 이전보다도 못한 삶에 직면한다. 따라서 돈 그 자체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돈은 조건적인 선(善) 일뿐이다. 이는 모든 소유물이나 자질, 심지어 외모와 능력에도 적용된다. 잘 생긴 사람도 자신의 육체적 장점을 그릇되게 사용한다면 실속이 없거나 남을 속이는 인물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적인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사악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것은 분명 다른 것들을 잘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야. 지식이 이를 가능하게 하므로 모든 수단을 다해 이를 준비해야 해. 가능한 한 현명해지는 것 말이야.”


소크라테스는 지식, 즉 무언가를 알고 깨달음으로써 외부의 조건들을 제대로 사용할 때 행복한 삶,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지식이라 말하는 것은 삶에 대한 철학, 행동의 방식,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 등을 말하는 것이리라. 사실 돈은 우리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재화이지만 시간은 저절로 부여되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통장에서 사라지는 돈은 아까워하면서도 하루의 일상에서 버려지는 시간은 아까운지 모른다. 어찌 보면 돈도 지식도 시간을 들여서야 얻어지는 것일진대 왜 우리는 시간을 만만히 보는 것일까? “난 아니야. 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니까.” 그러면야 문제 될 것 없다. 그런 사람은 일분일초도 헛되게 쓰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나 같은 바보들이다.


제법 긴 세월을 보낸 뒤 나는 뒤돌아본다. 그렇게 공짜로 얻은 시간들을 난 어떻게 보냈는가? 물론 하루를 열심히 살기 위해서 버둥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애쓴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센스다. 곰곰이 따져보면 휴식도 없이 달려온 그 길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의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길 가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하늘의 구름 한 조각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흘려보낸 순간들이 모두 낭비였을 뿐이다. 오늘도 내 삶 속의 시간은 통장의 돈처럼 사라진다. 그것들을 유용하게 써야 할 텐데. 젊은 시절의 활기찬 날들을 그저 그리워만 하기에는 남은 세월이 너무 짧다. 매 순간 나의 시간들을 어찌해야 할까. 아직도 그것을 사용하는 법을 깨닫지 못한 나는 정말 어리석은 인간이다. 인도의 시성이라는 타고르의 짧은 시 속에서나 위안을 찾으려나...


끝없는 시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주여 당신의 손 안에서 시간은 끝이 없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셀 수 있는 사람은 없지요.


낮과 밤이 지나면 세월은 꽃처럼 사라집니다.

당신은 기다리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의 수백 년 시간은 서로를 쫓아 작은 들꽃을 완성하니까요.


서둘러야죠,

기회를 잡기 위해 서둘러 움직여야 합니다.

부족한 우리가 늦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시간은 가고

그 시간을 제 것이라 주장하며 투덜대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어도

당신의 제단은 마지막까지 어떤 제물도 없이 비어있을 뿐입니다.


하루의 끝에 나는 당신의 문이 닫힐 것이 두려워 서두릅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간이 있음을 발견하지요.


Endless Time

Rabindranath Tagore


Time is endless in thy hands, my lord.

There is none to count thy minutes.


Days and nights pass and ages bloom and fade like flowers.

Thou knowest how to wait.


Thy centuries follow each other perfecting a small wild flower.


We have no time to lose,

and having no time we must scramble for a chance.

We are too poor to be late.


And thus it is that time goes by

while I give it to every querulous man who claims it,

and thine altar is empty of all offerings to the last.


At the end of the day I hasten in fear lest thy gate be shut;

but I find that yet there i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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