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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챗지피티

by 최용훈

챗gpt에게

비를 소재로 네 줄짜리

시를 써달라고 했어

‘비 오는 창가에 앉아

젖은 기억을 닦아내네

조용히 내 마음속으로

한 방울씩 스며드는 너‘


나는 평론가가 되어

gpt의 시를 심사했지

두 번째 행의 목적어 ‘기억을’에서

‘을’을 빼면 어떨까

셋째 넷째 행은 앞의 두 행과

어떤 관계가 있지?

젖은 기억을 닦아내니

빗방울이, 아니면 또 다른 기억이

스며든다는 것인가?


다시 한번 물어봤어

‘회색 구름 속을 타고

비는 조용히 내려와

마음 구석 어딘가를

살며시 두드린다 ‘

첫 행은 좀 이상해

그냥 회색 구름을 타고라고 해야지

비가 구름을 타고 내린다고?

괜찮은 표현이야

조용히와 살며시라는 부사는

대구(對句)를 이루지만 왠지 단조롭네.


내가 시를 써

이미 마음에 스며든 빗방울과

마음 구석을 두드리는 그것에

내 시는 점령당하고 말았어

창밖으로 비는 내리는데

시는 도무지 써지질 않아

그냥 앉아서

다시 gpt에 물어봐

시가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지?

그랬더니 시가 안 써지는 마음조차 시로 써보라네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아

백지 위에 비만 내린다

안 써지는 이 마음도

어쩌면 시의 첫 줄일까‘

그리곤 나를 위로하기까지 해


‘쉬어가도 되고, 돌아와도 돼.

시는 늘 그 자리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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