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컸던 적은 없었다. 과거에는 강아지를 방 안에서 키우는 경우는 아주 작은 견종에만 국한되었고 그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 현관 밖에 줄로 묶어두거나, 집안이라 해도 마루 구석에서 따로 재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 고양이는 원래 영묘한 동물로 여겨져 사람과 함께 어울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고,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심지어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의 먹이는 식구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적당히 섞어서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애완동물의 사료는 금붕어에게 주는 먹이 외에는 없었다. 사실 매끼마다 개나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은 요즘처럼 사료를 부어주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번거로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사료 외에도 각종 간식들이 즐비해서 어린 시절 생일날이나 받곤 했던 종합선물세트도 빛을 잃을 정도다. 예방접종은 물론이고 대형동물병원들은 사람들을 위한 종합 병원만큼이나 진료 과목이 다채롭다. 애완동물을 위한 액세서리, 옷이나 장비의 제조와 판매는 이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이다. 젊은 커플이 끌고 가는 유모차에서 아기 대신 강아지가 얼굴을 내미는 모습에는 가끔 실소가 지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다. 그것은 키우는 사람에게는 사랑이고 위안이고 공감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애완동물에 강한 집착과 애정을 느끼게 되었을까? 나 역시 어린 시절 키우던 까만색 강아지가 어느 날 집을 나가 찾을 수 없었을 때의 그 슬픔이나 허전함을 기억하기는 하지만 요즘의 세태는 조금 심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동물을 키우는 일은 많은 희생과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경제적인 면도 그렇지만 시간이나 행동의 제약이 결코 적지 않다. 사랑하는 아이를 혼자 두고 장시간 집을 비울 수 없으니,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초초하기까지 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가족이 된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이다. 십 수년을 함께 웃고 울었던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감정의 소모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지개를 건넌 반려동물에게 표하는 마지막 의식도 사람에 못지않다. 화장을 해서 그 유골을 함에 담아 책상 위에 놓고 애도할 정도이다. 애완동물을 사랑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만큼 그들이 주는 행복감과 정서적 교류가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히 인터넷에 뜬 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강아지들도 천국에 갈까?” 그 글은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어서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할 수 없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었다. 하긴 천국이라는 것이 어차피 기독교인들의 소망을 담은 것이니까 강아지가 천국에 갈 수 있는지도 같은 맥락에서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은 성서의 두 구절을 인용하여 천국을 설명한다(아가페 쉬운 성경). 계시록 21장 4절: “이제는 죽음도, 슬픔도, 울음도, 아픔도 없을 것이다.” 고린도 전서 13장 12절: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통해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보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모두는 고통 없이 영원히 살 것이며, 서로를 더욱 뚜렷이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상에서의 삶이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일 사랑하는 나의 반려동물을 이토록 좋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먼저 떠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영원히 같이 지낼 수 있다면!
성서에서는 천국에 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고 말한다. 마음을 다하여 믿고 예수가 주님이심을 말하는 자들만이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창조의 엿새 날 인간과 함께 지상에 살 동물을 만드셨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그것은 같은 땅을 밟는 인간과 동물의 깊은 유대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상의 동물들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지배를 받는 것이며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인간과 동물은 결코 동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천국에 대한 약속이다. 슬픔도 고통도 없는 그곳, 그 약속을 믿는다면 천국에서는 결코 반려견과의 이별을 서러워할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글은 빌리 그래함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천국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의 반려견이 필요하다면 나는 그것이 반드시 그곳에 있으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천국에서 반려견을 만나고 싶다면 우선 천국부터 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반려견이 스스로 그곳에 갈 수는 없더라도 천국의 주민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