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그달도 분명 추웠을 것이다
그때는 철없는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와,
우중충한 학교 건물과, 왜소하게 쪼그라든
스무 살의 사내아이가 있었다
좁은 이차선 도로 건너로
다방과 복사방과 허름한 밥집들이 몰려있었다
열아홉에 버림받은 여자아이와
겉멋에 취하고 야비한 술에 취해 말을 잊고, 숨을 죽이던
또 다른 여자아이가 있었다
비쭉한 돌멩이들이 군데군데 깔린 마당과
오벨리스크처럼 어딘가에서 훔쳐다 놓은 것 같은
흉물스러운 10층 건물이 좁은 땅 위에 위태롭게 서있었다
습한 지하 다방에는 글래머의 마담이 있었고
음침한 경양식집의 칸막이 사이로 아직 어린 비음들이
신음처럼 토해지고 있었다
톰 존스의 ‘퍼니 퍼밀리어 포가튼 필링’이 흐르고
산타나의 기타가 흐느끼고
딥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가 비명을 지를 때
고린내 나는 젊음들이 벌떼처럼 우글거렸다
광고가 끊긴 신문은 광고 없는 빈칸으로 나왔고
월남에서 돌아온 젊은 병사들은 정글의 나뭇잎처럼
고엽이 되어 비틀대고 있었다
젊은 아버지들은 열사의 땅에서 달러를 벌었고
치솟는 기름 값에 온 세상이 몸을 떨었다
화신 백화점 건너편 종각 뒤편에는 시몽다방과
코지 커피숍과 날밤을 세우던 철없는 젊음의 굶주림을 채워줄 오래된 국밥집들이 있었다
긴 머리의 사내아이들과 짧은 치마의 여자아이들은
광화문 사거리 파출소에 붙들려 있었고
조선일보사 일층 커피숍은 유령들의 집처럼 늘 분주했다
그때는 누구도 몰랐다 곧 세상이 바뀔 것을,
투쟁이 정의라 믿는 젊음들이 피를 토할 것을
문화방송에서 덕수궁 돌담길까지
온통 낙엽들로 덮인 그날의 아픔을
그 가버린 기억과 그리움을
나는 알지 못했다
세월이 가면 그 시절이 애달파
변해버린 그 길을 다시 걷게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