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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잃는다는 것

by 최용훈

열심히 일하던 직장을 어느 날 갑자기 잃는다면 어떨까? 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했던 직종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면?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희곡 가운데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 윌리 로우먼은 평생 전국을 돌아다니며 상품을 팔아온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철도와 도로의 급속한 확대로 상품의 유통과 판매 방식이 바뀌자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은 사라질 처지에 놓였고, 윌리는 결국 수십 년을 일해 온 회사에서 해고된다. 그는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젊은 사장에게 이렇게 외친다. “오렌지는 속만 먹고 껍질은 버리지. 하지만 인간은 그런 과일과는 다른 거요.” 그의 절규에 사장의 대답은 냉정하다. “사업은 사업일 뿐이에요.”


우리의 삶에서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의식주나 개인적인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소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더욱이 같은 일을 공유함으로써 타인들과의 유대를 이루고, 소속감을 얻는다. 하지만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무너진 교회를 신축하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놓는 세 사람의 인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죠?” 첫 번째 인부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보면 모르쇼. 식구들 먹여 살릴 돈을 벌고 있잖소.” 두 번째 인부는 이렇게 말한다. “벽을 쌓고 있어요.” 마지막 세 번째 인부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한다. “교회를 짓고 있답니다.”


일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무엇이든 간에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사실이 현실에서는 결코 녹록하지 않다. 일 자체의 중압감도 있으려니와 인간관계의 갈등에 부딪히는 일도 흔하다. 때론 자신의 일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개체로 인정받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바로 생존의 증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세계에서 재래의 직업들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미 사람들이 손으로 하던 일들이 공장의 자동화나 로봇의 사용으로 대거 대체되고 있고,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의사나 법률가 등 전문적인 영역의 일들도 사람의 손을 떠날 날이 머지않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인간의 능력을 훨씬 앞서는 기계의 등장은 이미 역사적으로 인류의 직업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더욱이 기술의 혁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1930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최초로 ‘기술적 실업’(technical unemployment)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켰다. 그는 기술적 진보로 인한 직업의 감소를 일시적인 불균형의 단계로 여겼다. 이에 앞서 18세기 영국의 고전주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노동인구의 지속적인 쇠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이러한 기술과 직업의 반비례 현상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산업 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과 변화로 인해 사람의 일이 줄거나 바뀌는 것은 불가피했다. 따라서 그러한 추세에 적응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직업의 변화는 예측의 단계에 있는 것이 많고, 사라지는 것만큼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미래의 직업 감소나 변화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다. 즉 노년이 되어 더 이상 일을 찾을 수 없다는 좌절감, 힘은 있으되 일할 곳이 없어 방황하는 절망감이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생계나 성취감이나 소속감의 문제를 넘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여전히 필요로 되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것을 통해 만족과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더욱 큰 행복일 것이다. 반대로 할 일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철학자 가세트(Jose Ortega y Gasset)는 이렇게 말한다. ‘일이 없는 존재는 죽음 보다 더 나쁜 삶의 부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직업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경제적 활동을 넘어서 무언가 몰두할 것이 있어야 한다. 일을 찾는다는 것은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다. 자신을 가둔 침체와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일을 잃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나 육체적 노화, 경기 침체의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당신이 가진 것으로,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렇게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한 시간의 무게 아래 짓눌릴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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