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나는 꽃 이름, 나무 이름, 풀이름을 모른다
농담처럼 모든 꽃은 진달레고
모든 나무는 전나무, 모든 풀은 그저 풀이었지
서울박이여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야
관심이 없었던 거지 꽃은 그저 꽃일 뿐이었으니까
서울에서만 살았으니
농사일을 알 리가 없다
무언가를 심는 것도 키우는 것도 어렵고
씨 뿌린 적 없는 잡초 뽑아내기는 고역일 텐데
서울 사는 사람이 주말 농장 가서 고생을 자처한다
여름 땡볕에서 수건 둘러쓰고 허리 굽힌
농부들 보기 민망해서 난 그런 짓은 안 하련다
하다가 무며 배추며 상추며 깻잎이며 고추며
매일처럼 잘만 먹는 내가 부끄러워져 슬며시
수저를 내려놓는다
모든 것이 소비되지만 한 번도
배달된 것의 기원을 떠올리지 않는 도시
과일도 채소도 쌀도
클릭 몇 번으로 해결하는 도시의 촌놈들은
좁고 길게 나있는 시골의 사잇길이
저녁놀 물들어 허리 꺾인 촌로가 비틀대며 걸어가는기억의 통로임을
알 리가 없다
창고에 놓인 고구마 한 포대에 겨울밤이 흥겨웠던
그 옛날 추억이 떠오르면 왠지 죄스럽기만 하다
서울촌놈은 아직도 쌀나무가 조롱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