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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鍊金)의 탐욕 그리고 열망

by 최용훈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역사상의 공헌 가운데 하나가 연금술(鍊金術)이다. 싸구려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을 말한다. 탐욕은 종종 인간의 보편적인 바람이나 기대를 반영하므로 그 탐욕의 결과는 새로운 변화와 진보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연금술이라는 서양인들의 환상은 현대 화학과 물리학의 성립과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이작 뉴턴도 연금술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금속을 금으로 바꾼다는 생각은 알렉산더 왕에 의해 정복된 후,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의 도시국가 파노폴리스(Panopolis)에 살던 3세기 후반의 철학자이자 연금술사 조시모스(Zosimos)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가치 없는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것은 영혼의 정화와 구제를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영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중세에 들어 이러한 생각이 다시 등장했을 때에는 보다 실질적인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싸구려 금속을 이용해 부의 지름길인 금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NOVA 대학교 고고학 교수인 움베르토 베로네시(Umberto Veronesi)의 말에 따르면 고대의 자연철학자들은 ‘숙성’(ripening)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의 금속들은 불순한 단계에서 궁극적으로는 가장 순수한 형태, 즉 금으로 숙성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이러한 일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기 위해서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연금술사들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법사의 돌'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이 숙성의 과정을 촉진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들은 모든 금속들이 수은, 황, 소금의 혼합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로 이러한 성분들을 재배치하고 불순물을 걸러낸다면 모든 금속들은 금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던 것이다. 연금술은 중세에 통용되던 물질이론 및 변형이론과 궤를 같이 하였고 따라서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연금술은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7-8세기 이후 근대과학의 발전에 따라 연금술에 대한 믿음은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화학이나 물리학 같은 새로운 학문에 밀려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금으로의 변형 가능성은 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지난 일세기 동안 꾸준히 실험되어 왔다.


원소의 정체성은 그 핵에 있는 양성자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금은 79개의 양성자, 납은 82개의 양성자를 지닌다. 따라서 납의 핵에서 세 개의 양성자를 제거하면 금의 핵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론적으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다른 금속을 금으로 변형시킨 최초의 성공은 1941년에 보고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과학자들이 입자가속기를 사용해 리튬과 듀테륨(중수소)의 핵을 제거해 수은의 원자를 만들었는데 수은은 금 보다 한 개의 양성자만을 더 가지고 있었다. 이후 그들은 고입자의 에너지로 수은의 핵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쳐냈고 마침내 금의 동위원소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고에너지의 불안정한 핵은 곧 붕괴되고 말았다. 40년 뒤 이 실험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화학자 글렌 시보그(Glenn Seaborg)에 의해 재개되었다. 그의 팀은 입자가속기 안에서 탄소와 네온의 핵을 지닌 샘플을 폭파시켜 수천 개 원자를 금으로 변환시켰던 것이다.


오늘날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실험하는 전 세계 연구팀들은 실험의 부산물로 금을 생산하였다고 말한다. 연금술이 현대의 과학에 의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연금술사의 꿈이 성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금의 총량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연금술에 의한 금의 생산에 드는 비용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실험실을 짓고 가동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이 가히 천문학적이어서 생산되는 금의 양으로는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1980년대 시보그의 실험실에 들어간 경비는 생산된 금의 가치보다 약 1조 배가 더 들었다고 한다. 결국 인간은 다른 금속으로부터 금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부자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금이라는 인간의 탐욕은 현대의 과학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양에 연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면 동양에는 연단(鍊丹), 즉 불로장생의 명약을 만들고자 하는 환상이 있었다. 진시황은 지상에서의 모든 부귀와 권력을 얻게 되자 영생의 꿈을 꾸게 되었고 불로초를 찾아 헤맸다. 결국 허망한 꿈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연단에 대한 그러한 갈구가 동양의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 분명 역할을 하였으리라 믿어진다. 가끔 우리는 탐욕과 열망의 경계에 선다. 연금과 연단에의 환상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강렬한 열망으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그 탐욕과 열망의 끝에 오늘의 과학문명이 세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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