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아름다워야 한다. 머리 위로 풀들이 흔들리고, 갈색의 부드러운 흙 위에 누워, 침묵에 귀 기울이는 것. 어제도 내일도 없는 것. 시간을 잊고, 삶을 용서하고, 평화로운 것.”
(실비아 플라스, ‘벨 자’ 중에서)
미국의 여류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 그녀의 짧은 삶은 우울증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 그녀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이후 치료를 받아 회복되는 듯했지만 그 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62년 또다시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게 된다. 그 해 그녀는 영국 유학 시절 만나 결혼한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별거를 시작한 직후였다.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예민하고 여렸던 그녀는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1963년 2월 11일. 그 해 2월은 유난히 추웠다. 실비아는 아이들 방에 쿠키와 우유를 넣어주고 부엌으로 간다. 아이들 방과 부엌의 문틈을 테이프, 젖은 수건, 옷가지들로 가스가 스며들지 않도록 단단히 봉인한 뒤였다. 그리고 부엌에 있던 오븐 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 가스를 틀고,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렇게 이 서른 살의 젊은 시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는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가 꺼져갔던 것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난다. 보스턴대학의 교수이자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부친은 실비아가 여덟 살일 때,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의 삶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 해, 아홉 살 아이가 지하실에서 자살을 시도한 것만 보아도 그녀의 내면이 얼마나 미묘하고 취약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이중적이었다. 크고 거대한 존재의 상실, 그리고 그에 대체할 존재에 대한 갈망, 그것이 남자에 대한, 남성적 세상에 대한 실비아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빠, 나는 당신을 죽여야 했어요.
당신은 내가 그러기 전에 죽었죠.
대리석처럼 무겁고, 신으로 가득 찬 자루,
샌프란시스코의 물개처럼 크고
잿빛 발가락 하나가 달린 무시무시한 조각상
그것은 아름다운 노셋 앞바다로
강낭콩 같은 초록빛을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대서양의 곶처럼 거대했죠.
나는 아빠를 되찾으려고 기도를 하곤 했어요.
오 아빠.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환상은 남편이라는 또 다른 남성에 대한 이미지로 이전한다.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하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시인이자 비평가인 테드 휴즈를 만난다. 그리고 만난 지 몇 달 만에 두 사람은 결혼한다. 1956년의 일이었다. 결혼 후 그녀는 영국의 신예 시인에 불과했던 남편을 미국 문단에 데뷔시키고, 남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녀는 생계와 자녀의 양육, 집안일까지 모두 도맡았고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영문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녀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세계는 점점 닫혀가는 것을 느끼고 갈등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그와 별거에 들어간 얼마 후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것이다.
내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나는 둘을 죽이는 셈이죠.
자기가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일 년 동안 빨아 마신 흡혈귀,
사실을 말하자면, 칠 년 동안.
아빠, 이젠 돌아누워도 돼요.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어요.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춤추면서 당신을 짓밟고 있었어요.
그들은 그것이 당신이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죠.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그녀의 종말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삶도 문학도 모두 그녀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이미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보호와 관심을 원했던 어린 여자아이는 처음으로 찾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어린 시절 겪었던 그 상실의 절망감을 다시 느꼈는지 모른다. ‘자신을 아빠라 말하는’ 남자, 그에 대한 분노는 결국 그녀 스스로의 파괴로 끝나고 만다.
나중에 영국의 계관시인이 된 테드였지만 그 역시 죽은 아내의 그림자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를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파경이 원인이 되었던 테드의 연인 아씨아 베빌은 그의 네 살 된 딸을 수면제로 재우고 실비아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뜬다. 그녀는 실비아의 죽음에 따른 세간의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고, 실비아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테드가 또 다른 여자를 찾아가자 결국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고만 것이었다. 두 여인의 죽음 이후 침묵을 지켜오던 테드 휴즈는 1998년 사망 직전에 실비아를 회상하며 쓴 88편의 시를 모아 ‘생일편지’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다. 아내를 사랑했던 이야기로 가득한 시집은 실비아에 대한 그의 연민과 참회의 기록일지 모른다. 그렇게 시인의 삶은 현실과 환상 속에서 방황하는 모양이다.
1963년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필명으로 실비아의 유일한 소설 ‘벨 자’(Bell Jar: 종 모양의 유리병)가 출간된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뒤 그 소설은 실리아 플라스의 실명으로 재출간된다.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이 작품은 한 젊은 여성의 정신 분열과 회복, 그리고 1950년대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던 억압의 그늘을 그려내고 있다.
시인을 꿈꾸는 여대생 에스더 그린우드의 삶은 그대로 실비아의 삶과 닮아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규범이라는 문제로 갈등한다. 학창 시절 한 잡지사에서 인턴으로 여름방학을 보내던 중 그녀는 두 사람의 동료를 만난다. 반항적이고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도린과 건강하고 처녀성을 지키려는 벳시, 두 여성은 에스더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상충하는 두 여성성을 나타낸다. 에스더는 동정을 지키지 못한 남자 친구 버디를 위선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마치 성경험이 많은 듯 행동한다. 에스더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린 시절 세상을 떴고, 그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형태로 남아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남성에 대한 그녀의 이미지는 고착되었다. 에스더는 소설을 써보려고 애쓰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자 낙담한 채 깊은 우울감에 빠져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다. 작가인 실비아의 경험이 소설 속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에스더는 그곳 여의사의 도움으로 혼전 성행위에 대한 압박감을 떨치게 된다. 그녀는 전기충격 치료도 받는데 그 순간 마치 갇혀있던 ‘벨 자’에서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외박이 허용된 어느 날 밤 마침내 무거운 짐이었던 처녀성을 버린다. 그러나 그 일로 에스더에게 하혈이 시작되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다른 환자 조안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옮겨진다. 그리고 그 직후 도움을 주었던조안이 갑작스레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의 죽음은 마치 에스더의 자살 충동을 대신하여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에스더가 정신병으로부터 회복되어 학교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새로 태어난 듯 보이는 에스더지만 그녀의 ‘벨 자’는 언제 또 그녀를 가두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자기 비하와 솔직한 고백으로 독자들에게 각인되었던 이 소설은 냉전시대와 매카시즘 등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경직되었던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제한되었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에스더의 인식, 그리고 그녀의 고립감과 편집증 등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성이나 모성, 지적인 성취와 관련해 여성에게 가해졌던 모순적인 기대들이 에스더의 분열된 자아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럼에도 실비아는 에스더의 회복을 통해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또다시 다가온 ‘벨 자’로 인해 깨어지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그녀의 시는 그녀가 죽은 뒤 남편 테드 휴즈에 의해 편집되어 ‘에어리얼’(Ariel)이라는 제목으로 1965년 출간된다. 그리고 그 시집으로 그녀는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게 된다. 예술에 대한 실비아의 사랑과 집착은 그녀의 생전에 실현되지는 못하지만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편의 손으로 그녀의 시들이 모아진 것은 삶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테드 휴즈가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코너’에 자리를 차지한 반면 그녀의 작은 무덤에는 남편이 고른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