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호기심은 참 놀랍다. 새로운 것이나 궁금한 것을 보면,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심지어 생명의 위험까지도 감수한다. 특히 모험가들이나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때론 상상을 초월한다. 원시 인류의 하나인 호모 날레디의 뼈 조각이 발견된 아프리카의 한 동굴은 입구의 지름이 불과 19센티였는데, 이 발굴의 책임자였던 고인류학자 리 버거(Lee Berger)는 본인이 직접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25킬로를 감량하고 갇혀 죽을 수도 있는 그 좁고 긴 동굴을 더듬어 갔던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과학적 탐구를 위해 위험을 도외시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1. 완후 : 인류 최초의 우주탐험가
전설에 따르면 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최초의 인물은 14세기 중국인 완후(萬虎)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달을 여행하기 위해 양손에 연을 들고 47개의 로켓이 달린 의자에 앉았다. 마침내 하인들이 발사체에 불을 붙이자 완후가 탄 의자는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로켓들은 발사 후 즉시 폭발하였고 완후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풍차를 향해 달려들던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오히려 그보다 더욱더 강한 환상에 빠져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행위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류 최초의 우주탐험가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여서 그 사실성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미우주항공국 NASA는 그를 기념해 달에서 발견된 분화구 하나에 그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2. 뉴턴 : 바늘로 제 눈을 찌른 만유인력의 발견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불렸던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은 광학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프리즘을 가지고 실험을 계속하였지만 눈의 해부학적 구조 즉 그것이 어떻게 색깔을 인식하는지에 대해 쉽사리 알 수 없었다. 결국 뉴턴은 송곳바늘을 들고 스스로의 눈을 실험용으로 삼았다. 그는 이렇게 그 순간을 기록하였다.
“나는 가능한 한 나의 눈과 눈 뒤쪽 가까운 뼈 사이에 바늘을 대고 그 끝으로 내 눈을 찔렀다. 그렇게 하여 내 눈에 순서대로 굴곡을 만들었다. 그러자 흰색, 검은색, 그리고 여러 가지 색깔의 원들이 나타났다.”
뉴턴은 연금술에도 관심을 가졌었고, 주화를 만드는 부서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위조 주화의 감별법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는 과학과 관련하여 멈출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당대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뉴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밤의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신(神)께서 말씀하시길 뉴턴이여 있으라 하시니, 어둠이 모두 빛이 되었다.”
3. 니콜라에 미노비치(Nicolae Minovici) : 스스로 목을 맨 법의학자
20세기 초반 루마니아의 법의학자 니콜라에 미노비치는 스스로 목을 매었다. 그는 스스로 목을 매는 것과 교수형을 당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를 알고자 했다. 그는 질식에 관한 실험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목을 맬 결정을 내렸다. 미노비치는 천장에 올가미를 달고 그 안에 목을 넣었다. 그리고 조수들에게 밧줄을 당기라고 지시하였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목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밧줄을 내리라고 버둥거렸다. 그는 한 달 동안 어떤 것도 목으로 넘길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실험 결과는 이후 ‘교수형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루마니아어와 프랑스어로 출간되었다.
4. 프란츠 라이헬트(Franz Reichelt) : 낙하산을 입고 추락한 재단사
오스트리아 태생의 재단사이자 발명가였던 프란츠 라이헬트는 자신이 디자인한 옷 모양의 낙하산을 시험하기 위해 1912년 2월 에펠탑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그의 낙하산은 작동하지 않았고 그는 추락사하고 말았다. 이 관경은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5. 에반 오닐 케인(Evan O’Neill Kane) : 자신의 내장을 꺼낸 외과의
20세기 초반 미국의 외과의사 에반 오닐 케인은 스스로 자신의 맹장을 꺼낸 사람이었다. 그는 복부 수술을 위해 전신마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부분마취로도 충분할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케인은 베개에 기대 몸을 세우고 앞에 거울을 세운 채 절개를 시작했다. 30분 후 그는 맹장을 자른 뒤 수술 자리를 꿰맸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절개 부분에서 다른 내장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그것들을 밀어 넣은 후 수술을 계속하였다.
6. 베르너 포르스만(Verner Forssmann) : 자신의 심장에 관을 박은 심장의
독일의 외과의사 베르너 포르스만은 자신의 심장에 카테터를 박아 넣었다. 팔이나 목 사타구니 부분의 절개를 통해 심장에 길고 가는 관을 삽입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일상적인 수술이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박동하는 심장에 무엇을 넣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로 여겨졌다. 1929년 어느 날 레지던트 시절이었던 포르스만은 자신의 팔을 마취하고 정맥을 통해 카테터를 그의 심장에 밀어 넣었다. 카테터가 제 자리에 위치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엑스레이를 찍기도 하였다. 그는 이 대담한 실험에서 생존했지만, 의사 자리에서 쫓겨나고 동료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용감한 시도는 1956년 노벨상 수상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
7. 프레데릭 호엘첼(Frederick Hoelzel) : 무엇이든 삼키는 남자
미국 시카고 대학의 연구원이었던 프레데릭 호엘첼은 유리를 씹어 먹었다. 유리만이 아니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까지 그는 자갈, 유리구슬, 강철 베어링, 실뭉치, 철사 등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삼켰다. 그는 그것들이 자신의 내장기관을 통과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를 실험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1930년 그의 연구는 ‘미국 생리학저널’에 ‘비활성 물질의 소화기관 통과율’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이렇듯 위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호엘첼은 노년의 나이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8. 앨버트 호프만(Albert Hofman) : 자신이 만든 LSD에 중독되다
LSD라 불리는 환각제는 1938년 스위스 화학자 앨버트 호프만에 의해 최초로 합성되었다. 그는 LSD를 재합성하면서 이상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는 그 경험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상상력이 극도로 자극을 받은 것 같은, 불쾌하지 않고 술에 취한 듯한 상태였다. 꿈꾸는 것 같은 상태에서 눈을 감은 채 나는 환상적인 그림들이 연이어 흐르고, 강렬하고 만화경처럼 움직이는 색채의 비상한 형태들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 지난 후 이러한 상태는 사라졌다.”
호프만은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LSD를 흡입했다고 결론지었다. 그 다음 주, 그는 1.25 그램의 LSD를 섭취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시험하였다. 그는 앞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뿐 아니라 불안감, 시각적 비틀림, 마비증상과 웃고 싶은 욕망을 함께 경험하였다. 작업을 계속할 수 없자 집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이 심각한 독성물질에 중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의사의 진찰을 받은 후 자신이 중독된 것이 아님을 확신하자 그는 점차 LSD를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9. 폴 스탭(Paul Stapp) : 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그는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로켓 썰매를 탔다. 지난 수십 년 간 첨단 항공기나 우주선을 보아왔던 까닭에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강력한 중력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 대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기술이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공군대령이자 의학연구자였던 폴 스탭이 사막에서 로켓으로 추진되는 썰매를 타고 엄청난 중력에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써 많은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
그러한 실험으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 1954년 12월 그는 정지 상태에서 5초 이내에 시속 1,000킬로미터로 가속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리고 1.4초 이내에 정지시켰는데 이는 46.2배의 중력을 가한 것이었다. 실제로 스탭은 잠시 시력을 잃기도 하였지만 지상에서 가장 빨리 달렸던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10. 배리 마샬(Barry marshall) : 세균을 마시는 남자
배리 마샬은 박테리아가 가득 든 죽을 먹었다. 오랜동안 의사들은 위궤양의 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많은 의사들은 그것이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명의 이 호주인 의사는 궤양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생기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하지만 이 균은 영장류에게만 영향을 미쳤고, 윤리적인 면에서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할 길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기로 결정하고 감염된 환자에게서 세균을 추출해 그것을 용액에 섞어 마셨다. 며칠 뒤 심한 구토와 탈진을 겪은 그는 자신의 장을 조직 검사하였고 그로써 세균과 궤양과의 연관성을 입증하였다. 이 실험으로 그는 2005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호기심은 끝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실험이나 모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입증해 보이려는 시도는 역사를 통해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호기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새로운 진실을 찾아내고 그 믿음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은 단지 과학의 분야에서만 있었던 일은 결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