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허리에 걸린 초승달

바다와 나비 : 김기림

by 최용훈

바다와 나비

김기림(1908~?)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The Sea and A Butterfly

Kim, Ki-rim


As nobody says to him how deep is the sea,

A white butterfly is never scared of the sea.


He flies down to it, thinking that it is a blue radish patch,

And he returns tired like a princess

With its frail wings drenched in the waves.


The bluish sickle moon over the waist of the butterfly is cold

When it gets sad because flowers are yet to come out from the March sea.


1920년대 회화적 모더니즘의 시풍을 문단에 제시했던 김기림의 시는 한 편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바다와 나비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이미지가 흰색과 푸른색이라는 두 색채와 어우러져 꿈처럼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창조한다. 그리고 그 배색의 무대 위에서 나비의 허리 위로 흐르는 초승달이 신비롭다. 젖은 날개와 꽃을 피울 수 없는 3월의 바다가 좌절된 꿈, 서글픈 동경처럼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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