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 원칙은 민주적 결정 과정에서 중심적인 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다수결 원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첫째로 다수의 작은 이익을 위해 소수의 큰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정책이 부정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하더라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다수에 의한 결정은 비효율적인 것이 되고 소수의 목소리는 공허할 뿐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다수결 원칙이 이른바 ‘다수에 의한 독재’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 지자체의 의회가 5대 4의 비율로 다수와 소수로 구성되어 있을 때, 시의회에 상정된 법안은, 다수가 의견을 통일하는 한, 언제나 다수의 의지대로 통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수와 다수의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다수가 의회를 지배하게 된다. 이로써 소수를 지지했던 상당수 유권자들의 의견은 무시되고 만다. 조금이라도 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의 의지와 이익만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최대 득표자가 차점자 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당선되는 선거제도에서는 선출된 의원의 숫자가 선거에서 드러난 유권자들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선거에서 100명의 당선자를 낸 정당의 총득표수가 80명을 당선시킨 정당의 총득표수보다 항상 많은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의 민주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다수결 원칙이 언제나 올바르게 민의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소수의 의지와 바람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선출된 권력을 두고 벌이는 최근의 논쟁은 근본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선거 결과로 다수당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대척점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다수의 국민이 있다는 상황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Winner takes all)라는 생각은 다수결의 원칙에서는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본질의 면에서는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선거에 후보로 나선 의사와 캔디가게 주인의 예를 들면서 그들의 공약을 이야기한다. 캔디가게 주인은 상대 후보자인 의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저 사람은 늘 여러분들에게 쓴 약을 줍니다. 여러분들에게 즐거움보다는 고통을 주는 것이죠. 저는 달콤한 캔디를 얼마든지 여러분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한편 의사는 이렇게 반박한다. “약은 당장에는 쓸지 몰라도 내일은 여러분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건강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뻔한 논쟁의 끝에 유권자들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선거제도의 문제점은 유권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자신들에게 무엇이 정의롭고 궁극적인 이익이 되는 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민만이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정치와 정책에 반영한다. 이러한 선거는 분명 다수결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결이 절대적일 수 없는 이유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모든 제도는 그 장점과 더불어 단점을 지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여 민주주의가 신봉하는 가치---다수의 선도와 소수에 대한 존중---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제도를 제도로만 보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끝없는 논쟁과 설득과 협의가 필요한 것이다. 힘들고 번거로워도 다수는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하고, 설득하고, 타협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내가 이겼으니 모든 것은 나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종 독선과 편견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에 인내와 관용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