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년 전의 고 인류들이 사용한 석기가 좀 더 발전된 다음 단계의 석기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수십만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들의 지능이 지극히 낮았을 터이니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개나 고양이가 석기를 만들어 그것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얼마만큼의 세월이 걸릴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게 영겁의 세월이 흐르고 지혜를 가진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은 대략 20-30만 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인류는 자신들이 알게 된 지식들을 축적하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고대의 제국들이 명멸하고 문자가 생기고 문명과 문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은 오랜 세월을 거치고 있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처럼 놀라운 속도의 변화에 마주친다. 수백만 년의 시간이 아니라 단 몇 시간, 며칠, 몇 년 안에 삶의 모습이 급변하는 것을 목도하는 것이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 19세기 후반의 2차 산업혁명, 20세기의 3차 혁명을 거쳐,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 AI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혁명’이라는 말은 원래 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전제로 한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왕정이 공화정으로 변화하였고, 1차 산업혁명을 통해 농업 중심의 생산체계가 공업으로 전환된 것처럼 삶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의 우리는 매 세기마다 혁명을 겪고, 지금도 새로운 혁명의 물결 속에 있는 셈이다.
사실 한 사람의 인생 안에서 요즘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은 적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0년 전만 하더라도 집에 전화기를 설치한 가정은 지극히 드물었다. 대도시를 제외한 시골에서는 손잡이를 돌려 수동으로 교환원을 연결해 전화를 했고, 이후 다이얼 식, 버튼 식으로 바뀌더니 1980년 대 후반에 이르러 처음으로 휴대전화가 등장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통화만이 아니라 손안에 작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게 되었으니 오늘날 6~70대의 노인들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엄청난 통신혁명을 겪어온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공상과학 소설에 나옴직한 인공지능에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이렇듯 눈 뜨면 모든 것이 바뀌는 세상에서 노년기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사실 별로 걱정할 것은 없다. 그들은 유년기에 석탄을 떼는 난로를 경험했고, 이후에는 석유를 원료로 심지에 불을 붙이는 곤로, 스팀 라디에이터 그리고 전자히터까지 모두를 겪어온 세대이다. 그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이나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변화도 그냥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사실 유튜브를 통해 임영웅이나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대부분 장년 이상의 남녀들이니 절대로 현대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인터넷이나 AI가 어색하고 난감한 기분이 들게 하지만 그것도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유튜브를 보듯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는 사용하기가 어렵거나 불편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 굳이 AI에 대해 젊은이들을 흉내 내거나 그들과 같이 신상품의 사용법을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누구나 그 편리함과 유용함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과학과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식당에서 화면으로 주문하는 것이 어려우면 직원을 불러 물어보면 된다. 요즘 KTX 터미널은 과거의 서울역 대합실보다 훨씬 쾌적하고 간편하다. 서울서 부산까지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해운대에서 점심 먹고 광안리 바닷가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저녁 시간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변화는 쉽고 편리할 때 유용한 것이다. 사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굳이 얼리어답터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과학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혜택은 때가 되면 저절로 누리게 된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