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국의 시인들(10)

스티븐 스펜더 : 빈민가 초등학교 교실

by 최용훈

스티븐 스펜더(Stephen Spender, 1909~1995)는 지적인 시와 좌파 정치사상의 옹호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시들은 사회정의, 계급투쟁,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초기 작품들은 그가 참여한 정치 문학적 운동에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다.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그는 1930년대 영국의 시를 대표하는 이른바 ‘옥스퍼드 시인들’ 그룹에 속해있었고 이에는 W. H. 오든(W. H. auden),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 세실 데이 루이스(C. Day Lewis), 루이스 맥니스(Louis MacNeice) 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스펜더는 전통적인 가치와 높은 수준의 시작법(詩作法)을 존중하면서도, T. S. 엘리엇과 같은 모더니즘 시인들의 난해성은 거부하였다. 그는 작가란 당대의 정치적 현안을 중시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였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런던의 소방대에 복무하였다. 영국 의회도서관의 시 전문위원으로 일하기도 한 그는 1970년대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미국 내의 여러 대학에서 자주 강연을 하였다. 1983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스펜더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많은 시인과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들은 계급, 권력, 정치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빈민가 초등학교 교실 속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불의를 통렬히 비난하는 그의 대표적인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빈민가 초등학교 교실

스티븐 스펜더


활기라곤 조금도 없는 아이들의 얼굴들.

뿌리 없는 잡초처럼, 파리한 안색 주변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힘없이 고개 떨군 키 큰 소녀, 종잇장처럼 마르고

생쥐처럼 불안한 눈빛의 소년. 아버지의 병들어 휘어진 몸을 되뇌며

비틀린 뼈를 물려받은 자라다만 불행한 아이.

책상에 앉은 그의 수업시간. 어두운 교실 뒤쪽에는

눈길을 끓지 못하지만 멋지고 어린 학생이 있다.

그의 눈은, 이곳이 아닌

나무로 된 방에서 다람쥐 놀이를 하는 꿈 속에 살고 있다.


더러운 흰 벽에는 구름 없는 새벽같이 환한 대머리 셰익스피어의 그림과

모든 도시들을 달리는 화려한 건물의 둥근 지붕 같은 누군가 보내준 그림들.

종모양의 꽃들 만발한 티롤의 계곡. 커다란 지도는 빛나는 세상을 보여주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지도가 아닌 교실 창문만이 세상의 전부일뿐.

그들의 미래는 안개로 가려지고,

좁은 거리는 납색 하늘에 갇혀

강과 곶과 별처럼 빛나는 단어들과는 너무나 멀리 있다.


분명 셰익스피어는 못됐고, 지도는 그릇된 예(例)일 뿐.

배와 태양과 사랑이 아이들에게 훔치라고 유혹한다.

그들의 비좁은 구멍 속에서 안개에서 끝없는 암흑의 밤으로

은밀히 돌고 있는 그들의 삶을 위해? 쓰레기 더미 위에서

아이들은 뼈가 튀어나오는 살가죽만을 덮어쓰고, 쇠로 만든 깨어진 안경은

돌 위에 박힌 깨어진 병조각 같다.

그들의 시간과 공간은 안개 자욱한 빈민굴이다.

그러니 숙명만큼 큰 저 초라한 집들로 그들의 지도를 덮어버려라.


지사, 장학관, 누구든 이곳을 찾는 자들이여

이 지도가 그들의 창문이 되지 못하고,

이 창문들이 지하묘지처럼 그들의 삶을 가두지 않으려면,

부수고 부숴서 열어젖히라. 그들이 마을을 부숴버리기 전에.

그리하여 아이들을 초록의 들판으로 인도하고, 그들의 푸른 세상이

금빛 모래밭에 뛰어들고, 그들의 거침없는 혀가 책 속으로 들어가

희고 푸른 잎들이 열리게 하여

그들의 언어가 태양이 되는 그들의 역사를 만들게 하라.


가난이 죄이던가? 우리의 국민소득이 2025년 3만 6천 달러에 이르고, 한국의 경제는 이미 세계 10위권에 들어섰다. 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 속에 철저히 무너졌던 나라가 불과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이루어낸 놀라운 기적이었다. 분명 오늘의 우리는 경제적 풍요와 과학적 발전의 혜택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경제적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굶주리는 아이들과, 소년소녀 가장의 무거운 짐을,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자들의 절망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으로 생존을 위협당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지글러(Jean Zigler) 교수는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 자신의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전 세계적으로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5초마다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매일 기아로 5만 7000명이 사망하며 세계 71억 인구 중에서 8억 42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다.’ 여전히 수많은 인간이 가난과 기아로 허덕이는 오늘의 세계를 풍요로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풍요의 외면에 숨겨진 엄청난 절망과 박탈감을 어찌할 것인가.


스티븐 스펜더의 ‘빈민가 초등학교 교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의 계급적 차별, 가난과 교육제도의 실패에 희생되는 아이들을 묘사하여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하는 교실이 자유보다는 억압의 상징이 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특히 교실에 붙은 셰익스피어의 초상과 세계지도는 아이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과 대비를 이루어 가난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무관심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20세기 중반에 발표된 이 시는 사회성 짙은 영국 시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스펜더의 1930년대에 좌파적 작품들과 달리 노골적인 정치적 수사보다는 도덕적 호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시대 시인들인 W. H. 오든이나 맥니스(MacNeice)의 시들과 비교하여 아이러니는 적지만 보다 직접적인 인도주의적 청원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시가 드러내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함의는 차치하고, 1960년대 동네 돌산 벽에 천막을 치고 살던 초등학교 시절의 한 친구가 그리워지는 시이다.


* 스티븐 스펜더 대표 시집 : ‘돌고래들’(Dolphins, 1994), ‘관대한 날들’(The Generous Days, 1971), ‘헌정의 시’(Poems of Dedication, 1946), ‘정적의 한가운데’(The Still Center,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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