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맥니스 : 백파이프 음악
루이스 맥니스(Louis MacNeice, 1907–1963)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주요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미묘하고, 아이러닉 한 시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시는 사랑, 전쟁, 전후 세계의 환멸감 등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명징함, 형식적 혁신, 지적인 깊이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북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런던 대학교 벨포드 여자대학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쳤으며 1941년에는 BBC 방송에 작가 겸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다수의 영국 현대시인들과 마찬가지로 맥니스 역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자들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 당시 영국문단의 분위기 속에서 스티븐 스펜더(Stephen Spender), W. H. 오든(W. B. Auden),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 등 좌파 시인들과 연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맥니스는 철학적 체계를 불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활동도 믿지 않았다. 그는 공산당이나 다른 정치 단체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모호한 정치적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심정적으로는 좌파이지만, 골수 좌파는 아니다.”
성인이 된 후 주로 런던에서 생활하였지만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그는 아일랜드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시는 친숙하고 때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당대의 사상과 이미지들을 총체적으로 묘사한다. 1963년 BBC 방송 팀과 음향체크를 위해 광산의 갱도 안으로 들어갔다가 병을 얻어 5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맥니스의 작품들은 정치적 주제나 인간 상황을 탐색하는 이후의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지적이면서 도덕적인 시들은 오늘날까지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다음은 현대의 삶이 전통적인 관습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풍자를 담은 시이다.
백파이프 음악
회전목마는 돌지 않고, 마차도 달리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리무진과 스트립쇼의 티켓뿐.
그들의 옷은 비단으로, 그들의 구두는 뱀가죽으로 만들어진다.
그들의 거실에는 호피가 깔리고, 벽은 들소의 머리로 장식된다.
존 맥도널드 경은 시체를 발견해 그것을 소파 밑에 두고
살아나면 부지깽이로 내려쳤다.
눈은 기념품으로 팔고, 피는 위스키용으로 팔았다.
뼈는 50세가 되면 아령으로 사용하기 위해 보관해 두었다.
요가도 필요 없고, 블라바츠키(사상가)도 필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은행계좌와 택시 안에 벗어놓은 스커트 자락뿐.
애니 맥도걸은 소젖을 짜다가 잡초에 발이 걸렸다.
깨어나 화려한 비엔나의 춤곡을 들었다.
순결 따위는 소용없고, 교양도 필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던롭 타이어뿐, 펑크야 누구든 때워주겠지.
레어드 오 펠프스는 호그머네이 신년 축제에서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우기며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발걸음을 세다가 한 발이 더 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카미클 부인은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자 짜증 난 눈빛으로
산파에게 말했다. “없애버려요. 이미 너무 많이 낳았으니까.”
가십 칼럼도 사라지고, 카일리 파티도 열리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어머니의 보살핌, 막대사탕 하나.
머레이는 엄지손가락을 베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에어셔에서 키우는 소의 가죽을 집어 상처를 싸맸다.
그의 형은 물때가 좋을 때 300마리나 되는 청어를 잡았지만
피 흘리는 그것들을 다시 바다에 던져 넣고, 교구(敎區)의 구제를 받았다.
청어협회도 사라지고, 성경도 쓸모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한가할 때 피울 담배 한 갑뿐.
그림 같은 궁전도 필요 없고, 거대한 경기장도 필요 없다.
핑크색 제라늄이 자라는 시골집도 무슨 소용인가.
정부의 보조금도, 선거도 다 필요 없다.
오십 년 세월 엉덩이 붙이고 앉아 연금에나 기대 봐야지.
달콤한 내 사랑도, 사랑스러운 아이도 소용없다.
그저 하루하루 일하다 보면 부는 바람이 복을 가져다주려나.
수은 온도계가 시간마다 떨어진다. 영원히 떨어진다.
하지만 그 핏빛 수은주를 부숴버린다 해도 날씨를 바꿀 수야 없는 노릇.
루이스 맥니스의 이 시는 물질주의와 회피주의 그리고 전통의 훼손을 비난하는 풍자적인 시이다. 정신적, 문화적, 공통체적 가치들이 사라지고 얄팍한 상업주의와 개인의 생존만이 남은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회전목마도 마차도 없고, 그저 물질과 새로운 쾌락만을 탐하는 사람들만이 남았을 뿐이다. 1930년대의 영국인들의 모습이지만 100년 뒤 오늘의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의 본성은 시대와 장소,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여전히 만연한 생명의 경시,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정신과 예술의 세계, 술에 취하고 절망에 흐려진 눈으로 주변의 누구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
1930년대에 발표된 이 시는 상업주의 문화, 정치적 환멸, 가난한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지 못하는 종교와 엘리트 문화에 대한 비난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존 맥도널드, 애니 맥도걸, 윌리 머레이 등은 훼손된 인간성의 전형들이다. 일차 대전 이후의 소외감, 정치의 몰락, 심리적 붕괴들이 희극적 과장 속에 그려지는 이 시를 통해 오늘의 우리 사회가 연상되지는 않는가. 종교와 신비주의와 예술이 무너진 자리에 천박한 안락만이 남은 현대의 불안을 냉소적으로 묘사하는 이 시는 점점 눈금이 떨어지는 수은주의 이미지로 마감되고 있다. 그 필연적인 몰락이 향수와 이상향에 대한 거부로 이어져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우린 여전히 같은 불안에 싸여있으니 말이다.
* 루이스 맥니스의 대표 시집 : ‘가을 저널’(Autumn Journal, 1939), ‘불협화의 현(絃)’(The Strings Are False, 1948)